모노드라마 배우가 된다는 것
모노드라마 배우가 된다는 것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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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섭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 대표

그리스어 모노로그(monologue)와 드라마(drama)의 합성어인 모노드라마(monodrama)는 한 명의 배우가 오로지 자신의 몸짓과 대사만으로 관객과 소통해 나가는 1인극 형식이다.

굳이 그 기원을 따지자면 고대의 제의적 행위로까지 거슬러 가지만 서구 근대극 형식으로 국한하면 대략 18세기 독일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 배우 추송웅에 의해 모노드라마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1977년에 카프카의 단편소설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각색한 ‘빨간 피이터의 고백’ 이라는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은 원숭이 피터를 통해 문명화된 인간 사회를 실존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불행하게도 44세의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추송웅은 이 작품으로 482회의 공연 기록과 15만2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6개월간의 준비기간 동안 당시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에 출입하며 원숭이의 생태를 관찰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철창 속에 들어가 원숭이와 함께 지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그가 공연 중 먹은 바나나 수가 700개, 관객이 그에게 땀 닦으라고 던져준 손수건만 300여 장이 넘었다고 하며, 공연 중에는 실제 원숭이가 자신의 몸에서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듯하여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입원비를 준비하듯 연극 제작비를 마련하여 병원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연습을 시작했다고 하니 연극을 대하는 그의 자세와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 후 한국의 모노드라마는 일부 중견 배우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이어지며 관객들의 이목을 받아왔다. 한 예로 ‘품바(최성웅)’, ‘위기의 여자(박정자)’, ‘늙은 창녀의 이야기(양희경)’ 등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서 1인극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관객들은 무대 위 단 한 명의 배우만이 이끌어가는 독특한 극 형식과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초청 공연된 ‘염쟁이 유씨’는 지금까지 3200회 공연에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롱런작품이다. 모노드라마 한 편으로 20년 이상 공연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났음을 반증한다.

유순웅, 임형택의 더블캐스팅으로 진행된 제주 공연에서 두 배우는 각자 15개의 배역을 혼자 소화하며 ‘염(殮)’이라는 고유의 장례절차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제주에서도 간혹 도내 배우들에 의한 모노드라마 공연이 진행되곤 했다. ‘챙(정민자, 2022)’,‘유리동물원(고가영, 2022)’, ‘점쟁이 곽씨(변종수, 2023)’ 등이 있었으며, 1인 피아노극(오종협·최성연, 2023)을 비롯하여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적인 워크숍(예술공간 오이, 2022)이 시도되기도 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사력을 다했던 고(故) 추송웅 배우의 모습을 상상하며 앞으로 도내 배우에 의한 수준 높은 모노드라마가 제주에서도 종종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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