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소들의 거처지가 사방에 걸쳐 있던 송당거친오롬
마소들의 거처지가 사방에 걸쳐 있던 송당거친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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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송당거친오롬

필자는 앞서 ‘제주에 거친오름이라 불리는 곳이 두 곳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중 하나는 명림로(번영로와 비자림로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도로)에 있고, 또 하나는 이번에 소개하는 구좌읍 송당리 산84-2번지와 덕천리 산1번지에 걸쳐서 소재하는 거친오롬이 있다. 이 오롬은 필자가 수차 탐사했지만, 그 뜻을 알지 못해 4년 넘게 연구하여 쓰여졌다.

송당 거친오롬은 필자가 자주 다니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오롬 앞에는 송당리에 살며 농사를 짓는 이종사촌 누이가 산다. 어느 해는 “누이야! 당근을 좀 사자”고 했더니 누이는 “거친오롬 앞에 자기의 당근밭이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다. 평소에 잘 아는 곳이라 거친오롬 앞에서 당근을 구했는데, 밭의 크기가 1만2000평이 되는 엄청나게 큰 밭이었다.

송당리 거친오롬은 해발 354.6m, 비고 70m, 면적 197.468㎡, 둘레 1776m의 작고 낮은 오롬이다. 동쪽으로는 안오롬(비고 98m), 밧오롬(비고 103m)이 있고, 북동쪽으로는 크고 우람한 채오롬(비고 117m) 서쪽으로는 거문오롬(비고 112m) 바로 동쪽이며 남동쪽으로는 거슨세미오롬(비고 125m), 멀리 남쪽으로는 성불오롬(비고 97m), 북쪽으로는 북오롬(비고 86m) 있는데 여기서 북오롬의 북은 북(北)쪽이 아니고 소리 나는 북이란 뜻의 ‘고(鼓)’를 한글로 바꿔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거친오롬은 유명한 오롬들에 걸쳐 있다.

그래서 송당거친오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바로 이웃의 거문오롬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 곳(한라산-일출봉/청산오롬-거문오롬동굴계) 중 하나이고, 안오롬은 제주 사람들은 잘 모르나 육지 젊은이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방문자 수는 새별오롬·용눈이·따라비보다 훨씬 많아 주차가 힘들 정도이다. 이처럼 크고 유명한 오롬들 속에 있어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또한, 북오롬·성불오롬은 화장실은 없으나 주차가 쉽다. 거슨세미오롬은 탐방로·화장실·주차장 시설이 잘되어서 거슨세미-안-밧 세 오롬을 하루에 트래킹 할 수 있는 거점 오롬이기도 하고 모두 탐방로가 있다. 그런 속에 거친오롬은 작고 낮으나 거칠기는 이루 말할 수도 없으니 그저 그렇다. 그렇게 버려져 있으니 거친오롬은 야생마 같은 오롬이다.

송당거친오롬을 소개한 글에는 봉개동거친오롬과 동일한 의미로 이 오롬을 소개 하지만 필자는 달리 본다. 거친오롬의 ‘거칠다’라는 말의 한국어는 ‘결이 매끄럽지 않고 윤기가 없다, 찬찬하거나 세밀한 데가 없다, 손질이 되어 있지 않고 어지럽다’라고 한다. 제주도가 1997년도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서 이 오롬을 두 가지로 소개한다.

그 중 하나는 ‘크고 거칠어 보이며, 황악(荒岳)·거체악(巨親岳/巨體岳)으로 표기한다’ 이 말은 봉개동 거친오롬이 아니고 송당 거친오롬일 수 있다. 또 하나는 ‘옛날, 이 오롬은 정의~제주 간에 말을 몰고 왕래할 때 거쳐 가는 오롬이다’라고 하는데 김종철은 이를 거린오롬의 와전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김승태도 이를 수용하는 입장이다. 필자는 이것도 수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의현(군)에서 제주목관으로 갈 때는 거문오롬 서쪽과 부대오롬 동쪽 사이의 언덕 길을 지나 거꾸리오롬에서 서로 꺾어 목관으로 향했다. 거꾸리오롬은 고려·조선공식관리들이 제주목으로 갈 때 유하는 원(院)과 좋은 샘물도 있어 원물오롬이라고도 하여서 주로 이 길을 이용했다. 그래서 마소를 모으고, 폭우를 피하는 ‘거처’로 쓰였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그것은 중심의 원형굼부리가 있는데, ‘우마가 물을 마시던 쉬운 못’도 있어서다.

그래서 이곳 원형굼부리는 마소를 거처시키던 ‘거처오름’의 와전일 수는 있으나, 거린오롬의 와전은 아니다. 필자의 또다른 견해는 ‘거친’은 ‘걸친’의 와전으로 본다. 북동쪽으로는 채오롬에 걸쳐 있고 북서쪽으로 길게 팔을 벌려 덕천에 걸쳐 있고 동쪽으로는 평야 건너 거슨세미오롬에 걸쳐 있고 남동쪽으로 길게 팔을 뻗어 평야에 걸쳐 있고, 그 평야는 지금도 필자의 이종 누이가 밭으로 쓰는 곳이다. 지금은 당근, 더덕, 콩 등을 농사짓고 있다. 이 오롬 주위는 좋은 풀밭이고 북쪽은 지금도 마소를 먹이기에 좋아서 서강목장이 있다. 이 오롬은 복합형태로 중심에는 야트막한 원형굼부리가 있다. 동쪽에서 보면 두 개 봉우리가 확실이 보이는데, 폭우·폭설 때는 마소의 거처가 되고 마소의 계수나 낙인(불도장) 찍기나 마소의 치료도 했을 것이다. 지금 이 오롬 일대는 밭·목장·판매용 잔디밭으로 쓰이니 ‘제주인은 오롬에서 나서 오롬에서 살다가 오롬에 뭍힌다’는 말을 수궁하게 되는 곳이 바로 거친오롬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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