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머루 끼고 돌다 만난 위압감 뽑내는 용바위 눈길
민머루 끼고 돌다 만난 위압감 뽑내는 용바위 눈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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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한라산둘레길 2구간 돌오름길(2)
언덕 따라 솟아오른 바위가 모인 암석지대
사색에 빠지게하는 숲속의 호젓한 길
자주빛 꽃에 잎사귀가 하나뿐인 약난초
돌오름길의 출발과 도착점인 거린사슴
녹하지악에서 본 민머루와 거린사슴.
녹하지악에서 본 민머루와 거린사슴.

■ 열하분출의 흔적 ‘용바위’

돌오름길을 걸으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바로 용바위가 있는 암석지대이다. 지금은 주변에 나무가 많이 자라 아늑하게 보일 정도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위들의 행렬에 뭔가 위압감을 느꼈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언덕을 따라 솟아오른 크고 작은 바위들이 시위를 하듯 길게 늘어선 것이 신기해 벌써 사진 찍기에 바쁘다.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을 들여다보면 ‘거린사슴에서부터 돌오름까지는 전체적으로 법정동 조면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간에 조면암으로 이루어진 구간을 일부 통과하게 된다. 이는 동쪽에 위치한 민머루에서 유출된 한라산조면암으로 영실과 같은 종류의 암석’이라 했다.

한라산 둘레길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화산지형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한라산 고지대와 저지대를 가로지르면서 형성된 길이기 때문에 길은 비스듬히 경사진 사면을 가로지르며 나타난다. 높은 지형은 한라산 방향이고 낮은 지형은 바다 쪽인데, 또 하나는 연속적으로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 하천의 출현이다.

용바위(일부)
용바위(일부)

■ 산길, 이름 없는 무덤 곁을 지나며

길을 걸으면서는 가끔씩 사색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길을 걸으면서 곳곳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 그와 곁들여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이 글을 읽은 후 그 길을 걷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자 함이다.

이런 숲속으로 난 호젓한 길을 홀로 걷다 보면 가끔 무덤가를 지나게 된다. 지관(地官)들은 돌아가신 어른들을 좋은 곳에 모셔서 후손의 발복(發福)을 바라는 상주(喪主)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깊은 골짜기까지 찾아와 길지(吉地)라고 택한 곳이다. 제주인들이 품고 있는 사고(思考) 속에는 불교나 민속신앙의 영향으로 윤회사상(輪迴思想)이 깃들어 있다.

‘우리 죽어서는 같은 나무로 자라자 / 낙목공산(落木空山) 빈숲에는 / 서로 등을 비비며 울고 / 언 땅 풀리는 춘절(春節) 날이 오거든 / 문어발 같은 뿌리 쭉쭉 뻗어 내려 / 새순 움트는 가지들 활개처럼 펴고 / 무성한 그늘 드리우는 / 살진 영혼으로 만나자 / 너는 비가 되어 내려라 / 빗물이 되어 한 열흘쯤 / 푹 젖어 흐르다가 / 저 낮은 이승의 계곡을 적시 고/ 우리 예전에 살던 / 빈한(貧寒)의 마을 / 골목길 씻어 내리는 빗물 / 그렇지, 장대비가 되어 한번 씻어 내려라 / 우리 죽어서는 같은 물이 되고 / 같은 나무가 되어/ 서로 씻어주고 닦아주는 / 심장의 핏줄로 만나자 / 같이 숲이 되어 만나자’ - 김용길 시 ‘윤회(輪迴)’ 모두

약난초.
약난초.

■ 독특한 모양의 약난초

어느 초여름 이 길을 걷다가 약난초 무더기를 본 적이 있다. 오디를 따 먹은 기억으로 보아 6월초였을 것이다. 오름에 다니면서 가끔씩 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무더기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약난초는 특이하게도 잎사귀가 하나뿐이다. 긴 타원형의 잎사귀 하나가 노란 점들을 박고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가, 기다란 꽃대를 올려 연한 자줏빛 꽃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쪼르르 피운다.

물론 잎사귀가 두 개인 제주에만 자라는 ‘두잎약난초’도 있지만, 이름이 ‘약난초(藥蘭草)’고 독특하게 생겨서 소중한 약재로 쓰일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식물이다. 비늘줄기를 ‘산자고(山慈姑)’라 하여, 채취해 수염뿌리를 제거한 뒤 햇볕에 말려 사용하며, 여러 가지 해독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쉼터.
쉼터.

■ 민머루와 거린사슴

민머루오름은 한라산 둘레길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지도로 보면 분명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발행한 ‘제주의 오름(1997)’에는 자세한 설명은 없고, 서귀포시 중문동 산1-3번지에 자리했고, 표고 882.7m, 비고 82m, 둘레 2459m의 원추형오름으로 나와 있다. 전에는 1100도로변에서 오름으로 길이 바로 나 있어, 길을 따라 가보면 서귀포 서부지역으로 전파를 송출하는 안테나 철판에 ‘산림보호’라는 간판을 보고 온 기억이 있다. 지금은 표고밭 때문에 오름을 돌아가도록 길이 나 있는 것이다.

그 기슭에서 돌오름길의 출발이나 도착점이 되고 있는 거린사슴은 서귀포시 하원동과 대포동의 경계인 1100도로변에 위치한 말굽형 화구를 가진 표고 742.9m, 비고 103m, 둘레 2258m의 오름이다. 영실 입구에서 1100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3km 지점 도로변 우측에, 한라산 남서사면의 산림지대와 목야지대의 경계를 이루어 가로누워 있다.

‘제주의 오름(1997)’에는 오름이 둘로 갈려 있어, 제주어의 ‘거리다’의 뜻과 ‘사슴’을 합쳐 ‘거린사슴’이라 한다고 나와 있다. 두 개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남서에서 북동으로 등성마루가 뻗었으며, 주봉에서 서쪽으로 다소 얕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어, 주봉을 붉은오름, 작은 오름은 알오름이라 부르고 있다. <끝>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길가 무덤.
길가 무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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