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일어서는 입춘
다 일어서는 입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0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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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때가 이른가. 하지만 어제 입춘(立春)도 지났고 오는 주말에 설날 연휴를 보내면 곧 우수(雨水)다. 겨우내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새잎과 꽃망울을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지상(地上) 모든 생명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그렇게 철 이른 것도 아닐 것이다.

음력 7월생이라서 그런지 나는 늘 여름을 좋아했다. 헝가리 세멜바이스(Semmelweis) 대학이 발표한 논문 ‘태어난 계절(Birth Season)이 성인이 된 후 성격 특성에 미치는 영향’에 보면 사람들의 계절 선호도가 태어난 계절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데 내가 그러했다.

그러다가 딱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름보다 봄을 좋아하게 됐다. 봄에는 이상하게도 마음 갈피갈피 묻어둔 빛바랜 기억의 음표들이 공기 중에서 새싹들과 함께 다시 싹트는 것 같았다.

▲봄을 좋아하게 된 건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꽁꽁 언 땅을 헤집고 다시 돋아나는 여린 새싹에서 느끼는 봄의 경의로움. 다시 싱그러운 초록으로 변해가는 모습에서 생명 부활의 신비로움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한국인의 계절 선호도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봄을 좋아한다는 데, 나 역시 그렇다.

옛사람들에게 신년(新年)은 봄의 시작으로 생각했다. 새해를 상징하는 입춘이 대개 음력 섣달이나 정월에 드는 이유이다. 이 때엔 나목(裸木)들도 봄꽃을 준비한다. 살아있는 우리가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꽤 오래전에 ‘달걀은 입춘에 선다’는 수필을 읽은 일이있다. 입춘날 이른 아침에 정성을 다해 달걀을 세워 보았더니 정말 거짓말같이 달걀이 우뚝 서더라는 이야기다.

입춘의 입(立)은 서다, 세우다는 뜻이다. 그러나 달걀이 선 것은 입춘이라서 선것이 아니라 세우려는 노력만 있으면 일년 내내 어느날이나 달걀은 서게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달걀을 세울수 없다는 것을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서 ‘달걀은 설수 없는것’으로만 여긴다. ‘클럼버스의 달걀’ 이야기가 너무나 우리들의 머리속에 깊숙히 자리잡아왔기 때문에 실제로 달걀을 세워볼 노력도 해 보지 않은채 달걀 세우기를 포기하는것이다.

힘들다고 어렵다고만 할게 아니다.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침체로 다들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신문과 방송 매체들도 고금리, 고물가라는 저울에 코를 박고 그 무게를 달아보지만 이제 봄이다.

얼마나 좋은 날인가. 생각을 바꿔 어깨를 펴고 일어서 밖으로 나가자. 그동안 눈도 비도 많이 내렸으니 올 봄엔 고사리도 실하게 필 것이라고 한다.

산에 올라 수백번 수천번 허리굽혀 산신에게 감사의 절을 하며 고사리를 캐고 그 땅 내음이 가득한 막걸리 몇 잔을 함께하면 무엇이 부러우랴.

이름 모를 새들이 아무렇게나 봄을 노래하고 얼었던 마음이 게실게실 풀리면 마냥 어렵게만 여겨졌던 세상사도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

다 별것 아닌 것처럼 만만해 보일 것이다.

달걀이 아니라도 좋다. 만물이 다 일어서는 입춘에 무엇을 세운들 어떠하리.

지금 우리에게 오는 봄도 언제 어느 순간이면 갑자기 멈춰 버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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