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움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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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순 수필

솔바람이 불어오거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이면 오히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진다. 잊히지 않는 선명한 그림같은 사진이 뇌리에 남아 내 마음을 가두어 버린다.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는 것이 소원처럼 달고 살았던 유년의 아이가 있었다. 얼굴이 예쁜 아이에게는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아이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만 있어도 마치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그의 어깨를 도닥거려주었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내 마음은 이미 꼬아져 버린 밧줄처럼 오그라들며 주눅이 들어버렸다. 그날, 나도 예쁜 얼굴을 만들어 주라며 어머니 앞에서 앙탈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얼굴에 덧발라 본들 달라질 게 뭐 있냐는 생각은 성장하는 내내 나와 함께했다. 어쩌면 화장기없는 얼굴 그대로 내버려 둔 탓에 더 먼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뭇 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담장으로 고개 내밀던 붉은 장미도 때가 되면 세인의 시선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눈썹 문신 유혹이 나를 찾아왔다. 아름다워진다는 유혹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만큼 지천에 널려있었다. 귀를 막아보아도 두런두런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뷰티의 기술을 가진 나라여서 웬만한 시술은 눈 감고도 한다는 말에 잠시 휘청거렸다. 혀의 달콤한 미사여구가 다가올 때마다 더욱 단단히 마음을 동여매었다. 하지만 아름다움 앞에서는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사실 눈썹 그리는 일은 얼굴 화장의 화룡점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적 감각마저 없는 내가 눈썹을 그리고 보면 한쪽이 올라가 있거나, 또는 가늘거나 양쪽이 전혀 다른 모습일 때가 많았다. 지우고, 그리기를 몇 번 하다 보면 눈두덩이는 어느새 숯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분칠도 하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눈썹 문신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던 차였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그걸 한다고 해서 내 외모가 달라질 게 있나 하는 의문이 자꾸자꾸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둘 눈썹이 빠져버린 자리에 드문드문 살이 보이자 후배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달달 볶아대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억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눈썹 문신을 해 버리고 말았다.

다잡고 있던 마음을 흔들어 버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숙성의 시간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철없이 외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시절에서 숙성의 시간을 거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느 책에선가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은 것’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대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내 눈 으로 스며들지 않을까.

문신을 하고 보니 껍질보다는 본질의 아름다움이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외면꾸밈을 지향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내면을 살찌우는 좋은 글 한 줄이라도 더 읽을 걸.

그랬다면 내 삶이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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