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김이 이김?
우김이 이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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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 적이 있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정말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문구를 어떤 종교의 기도문보다 강하게 믿으며 주문처럼 외면서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열정을 바쳤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나니, 사람들이 싫어졌다, 미워졌다, 슬퍼졌다, 불편해졌다, 두려워졌다, 실망스러웠다, 무서웠다, 짜증났다, 소름끼쳤다, 거북했다, 원망스러웠다, 괘씸했다, 환멸스러웠다, 공허했다, 섬뜩해졌다. 한순간에 폭발하듯이 솟아오르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만치 내 삶을 구석쟁이로 몰고 갔다.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종교의 신(神)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했다. 하지만 신들은 이미 인간의 언어를 잊은 것인지, 내 기도가 모자란 것인지 어떤 신도 나의 기도에 답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언제 그들을 알은 체 하기나 했던가. 언제 신들에게 경배하며 그들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기나 했던가. 더구나 내 종교는 아신교(我神敎, 내가 곧 신이다)였으니, 필요할 때만 자기를 찾는 내게 손을 내밀 까닭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하늘은 나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결국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졌던 희망과 기대를 접고,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말았다. 신마저도 해답은 아니었다. 결국은 내 정성만큼 대답하고 반응을 보이는 식물에게 마음이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눈과 마음이 그들의 터전인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연은 인간을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 자연에 실망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자연이 재앙을 내린다면 그것인 인간이 범한 과오에 대한 응보(應報)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심지어 사람에게마저도 그렇다. 

미리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면 상대를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누구도 ‘어떤 사람’이라고 정해진 이미지는 없다. 그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강요할 권리도 없다. 상대가 만든 나의 이미지에 맞춰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생부터 자기본위가 아니던가.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지구의 자전축 따위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자전과 공전마저도 허위고 조작이라는 ‘우김’만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야말로 ‘우김이 이김’인 시대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은 이러한 현상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네 편이면 무조건 그르다는 논리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책임과 의무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말이고, 숫자와 힘으로 권리라고 주장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밀어붙이면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숫자가 상식과 이치를 압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세상은 정녕 꿈일까.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고, 사람에게서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헛된 일일까. 우리 사회의 바닥을 흐르는 생각의 지평들이 어느 순간에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것이 정녕 시대의 추세고 새로운 가치관일까.

오늘도 산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무들에게 묻는다. 정녕 사람이 너희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시대는 지나가 버린 과거일 뿐일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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