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문화 보존의 노력-함덕리 1구 포제(酺祭)와 포제자료 발간
마을문화 보존의 노력-함덕리 1구 포제(酺祭)와 포제자료 발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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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섭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 대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예로부터 지역 고유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보존해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속, 제의문화이다. 제주는 한 해의 절기(節氣)나 마을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당굿이나 굿놀이, 또는 제의적 행사들이 진행된다. 

포제(酺祭)는 매년 정월 첫 정일(丁日),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유교식 제사의례이다. 포제의 기원은 원래 남녀 모두 무속의 당에 모여 굿을 하였으나 남성 중심의 유교제법(儒敎祭法)이 보급되면서 남성들이 무속의 당에서 떨어져 나와 포제를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시기는 대략 조선시대 중기 이후며 제주도의 경우 유교적 관행이 보편화되는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도내 100여 개 이상의 마을에서는 포제를 봉행하고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함덕리는 현재 5개의 구(區)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이 중 1구와 4구 두 개의 마을에서 현재까지 포제를 행하고 있다. 날짜는 모두 혹정혹해일(或丁或亥日-정월에 처음 맞는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에 지내며 제의의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즉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지내며 행제는 홀기(笏記-제례의 의식순서를 적은 글)에 의해 진행되는데 홀기문 축문에는 공히 마을의 평안과 목축 번식, 재액 방지 등을 기원한다.

함덕포제는 마을회관에서 진행하는데, 먼저 포제일 전에 금줄을 걸어 부정한 일을 방지하도록 하고 제관이 입제하면 경건하게 제를 올린다. 재물은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바치며 그 외 백시루, 미나리, 명태, 과일 등을 진설한다. 그리고 제의가 ‘끝나면 손님과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서로의 안부를 물으려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이번에 함덕리 1구에서 의미 있는 마을 사업이 진행되었다. 즉 함덕리 1구에 소장되어 있는 마을포제에 관한 근현대 문서 중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문 수기로 작성된 자료일체가 한글로 번역 출간된 것이다. ‘함덕리 1구 포제자료집’으로 명명된 이 책에는 각비용기(各費用記), 축문(祝文), 홀기등본(笏記謄本), 제관기(祭官記), 부조기(扶助記) 등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마을에서 포제를 지낼 때 사용했던 축문, 홀기 등의 문건자료는 물론 연도별로 지출된 경비 내역과 포제에 참여했던 삼헌관 등 제관들의 명단,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부조 내용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이 책의 발간을 주도한 강남식 1구민회장은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곤궁의 시절, 그리고 4·3을 거치며 관공서가 불에 타고 서류들이 소실되는 가운데에도 포제 자료들을 보자기에 싸서 귀중하게 전달해준 역대 구장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감격의 소감을 피력하였다. 

이번 번역 사업에는 제주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를 비롯해 4명의 번역, 자문위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함덕리 1구에 소장되어 있는 포제 관련 문헌 자료가 중세사회에서 근현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제주의 독특한 지역성과 함께 제주지역 마을공동체의 운영 실태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도 어김없이 포제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금년에 진행되는 함덕리1구 포제는 마을 주민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날이 될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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