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로써 끝·처음(終始)을 이어라
예(禮)로써 끝·처음(終始)을 이어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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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칼럼니스트

‘멀리(永) 옮겨(遷)가심이 예(禮)입니다(永遷之禮영천지례).’
일포(日哺)날 해 저물기 전, 망인에게 부르는 노랫말 첫 행이다. ‘아무리 궂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라나. 이승에서 하직 절을 많이 받았어도 떠나기 싫을 테지만, 예를 지키라는 노랫말엔 망령도 승복한다. 저승으로 떠나가기로 마음먹는다. 도대체 예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힘이 센가? 

공자사상을 종합선물에 비유하면, 그 상표는 덕(德)이다. 상표를 떼고 선물세트를 열어보면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내용품으로 들어있다.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의 별칭이다. 예(禮)를 설문(說文)하면 ‘넉넉함(豊)을 보이는(示) 것’이다(示·豊=禮). 어떻게 사는 것이 ‘넉넉하게 보이는’ 것일까.

끼니 때 나그네가 들르면 숟가락을 하나 더 얹어라. 나그네 또한 배가 곯아도 끼니 때 남의 집에 들르지 않는다.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촌을 운영하는 탈북한민 어느 여주인은 외로운 세입자들을 가족처럼 보살핀다(仁). 그 모습이 TV화면에 비쳤었다. 매우 감동적이어서, 어느 시청자가 찬조를 보낼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 했다.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녀는 사양했다. 하늘에게서 적게 받아도 나누며살면 넉넉하고, 많이 받아도 혼자만 쓰면 모자란다. 

“시간을 어떻게 이으며 살아갈까?” 
시간이란 아무에게나 무한정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새해 들었는데 묵은해 갖추어야 할 예를 놓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양력으로는 새해이나, 음력으로는 세밑이 가까워온다. 음력으로는 아직 갑진년(甲辰年)이 아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시간의 길이는 해(年)로써 끝나고 비롯되며(始); 이어져야 실올처럼 직물로 짜인다. 세밑을 이어야 연도숫자 더하며 살아간다. 시간실올은 어떻게 이을까? 이것을 잇는 풀(glue)이 곧 예(禮)이다. 조상님 차례지내기, 세배, 기도, 연하장, 헌금, 봉사활동 등. 내 삶의 모자람을 채워 준 사람들에 대하여 갖추어야 할 일들이며, 새롭게 한 해를 주십사는 간청이다. 그래야 끝이 처음 되어 다시 시작된다(終而復始종이부시)<近思錄>. 

실의 굵기를 살펴본다. 실에서 가장 가는 것은 누에가 뽑아내는 홀(忽)이며, 홀 열 올을 모아 꼬면 사(絲=10忽)가 되고, 사(絲) 열 올을 합쳐 꼬면 호(毫=10絲)라 한다. 그러니 가을의 개털(秋毫) 한 가닥은 누에 실 백 올의 굵기이다(毫=100忽). 

삶의 시간은 어떤 굵기일까? 어떻게 꼬아 쓸까? 삶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와 받으면서도 어려울 때가 있다. 도움을 주는 삶은 굵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도움 받아야하는 삶의 시간은 가늘다. 도움을 주는 여유(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始) 것; 맛있게 보이는 고기(羊) 앞에서 내(我)자신만 생각하면 의(義=羊+我)가 아니다. 이익(利)이 눈앞에 보일 때는 의리(義)를 떠올려라(見利思義)<안중근>. 요즘은 그것을 잊어버린 동물적 세상이다(見利忘義)<2023 전국교수협의회>.

예(禮)가 무엇이기에 망령도 따르는가.
시간의 실올을 무엇으로 이어 사는가.
나누면 남고 혼자 챙기려면 모자란다. 
어떤 굵기의 한 해 삶을 살고 싶은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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