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 자에게 내려지는 저주’
‘이긴 자에게 내려지는 저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21 1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에는 싸움에 이기고도 승리하지 못 한 사례가 허다하다.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는 기원전 280년 정예군 2만5000명을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 헤라클레아와 아스쿨룸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여러차례 전투에서 정예군사 2만명과 우수한 장수들을 대부분 잃었기 때문이다. 피로 물든 전장에서 그는 “이런 승리를 더 하다가는 망하고 만다”고 개탄했다.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 오기(吳起)의 ‘단판 승부론’도 같은 말이다. 그는 승부는 한번 싸워 결정지어야 한다고 했다. “다섯 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으면 재앙을 면치 못하고, 네 번 싸워 이기면 피폐해진다”는 것이다.

▲‘이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서 좋고, 자신의 능력을 널리 보여 줄 수 있어서 좋고, 새로운 기회가 생겨서 좋다.

하지만 싸움에서 이긴 이후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가 크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제학계에는 이 리스크를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1992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같은 이름의 책을 출간했는 데, 우리말로 풀자면 ‘이긴 자에게 내려지는 저주’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며 때로는 합리라는 이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배경이다.

일례로 경매에 참여해 높은 가격을 불러 결국 물건을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 물건의 가치가 경락가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 경매에서 이기고도 손해를 본다. 이것이 ‘이긴 자에게 내려지는 저주’다.

▲이 개념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등 입찰경쟁의 특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2004년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다.

탄핵을 주도했던 국회의원들은 ‘이겼다’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짙은 근심이 됐다. 국회 의석수만을 믿고 힘을 과시했지만, 이는 결국 민심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무리수’에 민심은 등을 돌렸고, 탄핵 주도 정치세력들은 2004년 18대 총선에서 ‘참혹한 패배’의 주인공이 됐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닌 힘의 우위를 앞세운 밀어붙이기로 목표를 쉽게 이루기는 했지만, 결국 승자의 저주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선거라는 것도 결국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입찰경쟁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무리한 입찰을 해서 당선을 했어도 화(禍)를 입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지나친 욕심이 이성적 판단을 흐린 때문이다.

지역사회 현실 세계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심심찮게 목격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 한때 성공의 축배(祝杯)를 들었지만 결국 그게 독배(毒杯)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진실로 이기기위해서는 자신의 상황과 주변의 환경을 면밀히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욕심이 앞서면, 목표를 이룰 수 없고(欲速不達·욕속부달), 지나치면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過猶不及·과유불급).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