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풀이
화풀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6.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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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병영(兵營)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예전에는 상급자가 바로 다음의 부하를 체벌하는 관행이 있었다. 예컨대 중대장은 소대장을, 소대장은 선임하사를, 선임하사는 분대장에게 차례대로 몽둥이질을 한다.

제일 나중에는 이제 막 배치된 이등병만 남는다 이등병은 자기가 당한 고통에 대해 화를 참거나 강아지를 걷어차서 화풀이를 하는 수가 있다. 화풀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화풀이를 본능으로 보고 ‘화풀이본능’을 쓴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바래시와 정신과 의사 주디스 립턴은 공저(共著)에서 누구나 한 번 생각해 보았을  법한  보복 복수 화풀이 그리고 용서에 대한 고민과 의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다.보복은 가해자에게 즉시 반응하는 것으로 말벌집을 쑤시면 당하게되는 것처럼 비례적이다.

복수는 지연된 반응으로서 그 강도는 비례적이지 않다.눈에는 눈이 아니라 이로 갚기도 하고,생명으로 갚는 일도 있다.

화풀이는 앙갚음의 가장 기이한 형태다.고통의 원인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누군가에게 갚아주는 행위다. 화풀이를 공공연히 용납하는 사회는 없지만 보편적이라 할 만큼 만연되어 있다.

보복은 정당방위로 용인될 수 있고 복수는 용서가 최선으로 받아드려진다. 그러나 화풀이는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다.몇 가지 화풀이의 예를 들어보자.2001년 미국의 9·11사건은 테러리스트 공격이 사담 후세인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니다.

2003년 6월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중략)이 전쟁의 진짜 이유는 9·11사건 이후 미국인들은 아랍-무슬림 세계의 어느 나라든 탓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중략) 사담 후세인이 공격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우리가 그렇게 할 수있었고,그가 그런 일을 당해도 쌌고,그가 그 세계의 중심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국가적인 화풀이의 성향을 느낄 수 있다.우리에게 쓰라린 통한(痛恨이 되고 있는 4·3사건의 경우 서북청년단이 그토록 잔인무도한 것은 김일성에게 당한 고통을 제주도민들에게 화풀이 할 수 있게 방치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7일,서울 강남의 노래방 건물에서 20대 여성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을 두고,정신병자가 저지른 사건으로 치부하려고 하지만 그 증상의 사회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무 관계 없는 약자에게 화풀이한 것일 수도 있다.살다 보면 누구나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다.

이때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자기에게서 끝내고,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의 고통은 증가하지않을것이며,살벌한 사회도 되지 않을것이다.어떻게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 화풀이를 하고 싶을때 우리는 먼저 그 행동이 세상의 고통을 증가시킬 것인가 아닌가를조금이라도 생각해 행동해야 되지 않겠는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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