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거부하는 사회
희생을 거부하는 사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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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희생이란 어떤 일이나 사물, 혹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내가 가진 것이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일정한 대상이나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이바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발적 의지에 따라 진심으로 이루어지는 희생은 조직을 발전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을 행한 본인에게도 감동을 수반하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 때문에 가정이나 국가가 잘 유지되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러한 희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면 미래는 암울할 것이고 희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그것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배려와 헌신을 기반으로 하는 숭고한 희생(犧牲)이 토대를 이룰 때에야 지속인 발전을 기약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희생을 나 몰라라 한 채 구성원 개개인의 주장이나 권리만 내세우는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리를 요구하는 주장과 숭고한 희생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권리를 요구하는 주장만 있고 희생은 사라진 상태가 되어 안타깝다. 

희생의 실종은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가족 관계에서 매우 심각하게 나타난다. 자식은 부모를 위해 희생할 생각이 없으며, 부모 또한 자식을 위한 희생을 주저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족의 개념은 희미해졌고 1인 가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결혼의 가능성과 출산율의 하락으로 직결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구 절벽에 따른 국가 소멸 위기가 눈앞에 와 있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는 다양한 정책과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붓고 있으나 출산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낮아지고 있어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려와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희생은 가족을 묶어주는 중요한 고리인데 그것이 사라지니 이러한 현상이 점점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희생이 사라지면서 문제가 되는 현상으로 남녀 관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사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쌍방의 희생이 남녀 관계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인데 남녀 모두 상대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싹트면서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와 국가의 바탕이 되는 가정이 바로 남녀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희생의 실종으로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는 또 다른 하나는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만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생각보다 자기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챙기는 일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국민과 국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계, 언론계, 공직 등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한다면 일반 국민도 그를 본으로 삼아 헌신과 배려가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키워내지 못 한다면 나라 전체가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낮은 수준의 사회로 추락해 버리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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