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황제 실록 속 조선 내용만 뽑아 만든 자료집
淸 황제 실록 속 조선 내용만 뽑아 만든 자료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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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淸實錄) 중 조선 자료집 2종
청실록(淸實錄) 중 조선 자료집 2종 표지.
청실록(淸實錄) 중 조선 자료집 2종 표지.

대학 신입생 시절 학과 연구실에 가면 대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일 때가 많았다. 다들 낯선 일투성이니 당연히 궁금한 게 많았던 지라 그 갈증을 해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니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인사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조용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한 엄숙한 분위기의 대학원생 선배가 자리 잡고 앉아서 차분하게 책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고, 왠지 조용해서 살그머니 들어가 보면 어김없이 그 선배가 있었다.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고 말을 걸기도 어려워서 한동안 서로 나눈 대화도 거의 없었다.

약간은 까칠(?)한 성품에 공사가 분명해서 과 선후배들이 다들 어려워한 선배였기에 나 또한 어려워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알아 온 세월이 올해로 벌써 40년째다. 성격도 많이 다르고 관심사도 달라서 지금도 만나면 여전히 궁시렁대지만 그간의 세월이 헛되진 않았는지 지금은 그래도 언제나 마음 편하게 소주 한 잔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다.

청실록 인국조선편자료(1987) 편집설명 중 ‘卑視鄰國 妄自尊大’ 부분.
청실록 인국조선편자료(1987) 편집설명 중 ‘卑視鄰國 妄自尊大’ 부분.

그런 선배가 몇 년 전부터 자꾸 아끼고 아끼던 장서를 나눠준다. 이제 곧 정년이라 오는 8월이면 선배와 내가 처음 만났던 그 교정을 떠난 단다. 얼마 전에도 선배의 책을 얻어 와서 요즘 그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주목되는 책이 있어서 오늘은 그 책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중국 청실록(淸實錄) 중에서 우리 조선과 관련된 사료를 뽑아서 만든 자료집 2종이다. 하나는 ‘청실록 인국조선편자료(鄰國朝鮮篇資料)’(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1987)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청실록 조선사료적편(朝鮮史料摘編)’(길림문사출판사 1991)이다. 모두 근 300년의 중국 청나라 역사를 상세하게 기재한 편년체 자료인 태조부터 덕종까지 11대 황제의 역대 실록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선통정기(宣統政紀)’에서 뽑은 우리나라 관련 사료를 모은 자료집이지만 편찬한 기관과 사람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내용 차이는 있다.

그 중 1987년에 나온 자료집 편집설명에서 “당시 조정(朝庭)이 가진 ‘이웃 나라를 멸시하고 도리에 어긋나게 스스로를 높이고 크게 여기는(卑視鄰國 妄自尊大)’ 태도에 대해 모두 삭제하지 않았으니 독자들은 마땅히 역사기록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을 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우리에게 공식적으로는 2002~2007년 시행된 ‘동북공정’을 주도한 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조차 그 밑작업에 해당하는 이 자료집이 출간될 당시에는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마땅히’ ‘정확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실록 조선사료적편(1991) 본문 부분.
청실록 조선사료적편(1991) 본문 부분.

4년 후에 나온 같은 내용의 책에서는 그러한 언급조차 없고, 10여 년 후에 시작된 그 ‘공정’에서는 입맛대로 역사 재단을 시도하면서 지금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대국(大國)’ 다른 나라를 ‘소국(小國)’ 운운하는 그들에게 역사는 과연 무슨 의미인지 되묻고 싶다. 

앞선 왕조의 역사인 ‘명사(明史)’를 편찬하는 사관(史官)들에게 ‘어찌 감히 전대의 영주(令主)를 가볍게 논쟁하겠는가…(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의에 공평함을 잃으면 역사를 믿기 어렵다…천하 후세의 공론을 기다리도록 하라’(淸實錄 康熙三十一年 正月 二十七日條)고 했던 게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청나라의 한 황제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였다. 부끄럽지 않은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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