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하거나 폐지하거나
축소하거나 폐지하거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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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최초의 인류에게 하신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였다. 이름 없는 풀꽃도 씨앗을 남기고 하찮은 벌레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며 창조 질서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그러나 모든 동식물이 그러하지만 인간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구 절벽이 화두가 되는 요즘이다. 무엇이 아이가 타는 유모차보다 개가 타는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는 시대가 되게 했을까? 한 단어로 말하자면 ‘버거움’이 아닐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넘어야 할 취업경쟁이 버겁다. 각고의 노력 끝에 취업했다 쳐도 주택 마련에 대출금 상환에 목을 매달고 살아야 할 판이니 결혼도 버겁다. 결혼했다 쳐도 맞벌이를 해야 하니 육아도 버겁다. 자영업을 한다 해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가 어려우니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비 대학생이다. 도시의 서민 가정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월 100만원에 육박하고 젊은 부모들의 로망인 영어유치원 교육비는 월 150만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유아나 초등학생의 경우가 이렇다 하니 그 이상은 생각하기도, 바라보기도 버겁다.

취업과 주택 문제, 교육비 문제 등 버거운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하는데 그 산을 넘고 나면 신천지가 열리나?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는 마음도 이해가 가고 아이를 낳지 않는 마음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불꽃 같은 젊음은 잠깐이요, 책임져야 할 무게와 시간은 무겁고 길다. 그러나 부모로서의 그 길고도 버거운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꽃 한 송이를 보면서 깨닫는다. 씨앗은 긴 시간 땅속에 묻힌 채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마침내 그 열망이 무르익어 꽃을 피운다. 부모로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 부모님들도 한겨울 폭설 같은 가난 속에서 비바람 맞는 고생을 묵묵히 견디며 우리를 키우셨다. 부모님에게 우리는 푸른 잎이었고 붉은 꽃이었을 것이다. 

한때 과외가 불법인 시대가 있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에 의존하는 요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제도를 바꿀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입시의 계절이 지나간다. 수시 합격자는 느긋하겠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정시 응시자와 학부모는 피가 마르는 시간이다. 
그동안 정시는 축소되고 수시제도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왔다.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논리와 다양한 인재를 수시를 통해 뽑겠다는 취지야 물론 공감한다.

그러나 수시제도가 가진 자들의 기회가 되어왔음을 우리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확인했다. 항간에는 수시를 없애고 수능시험을 두 번 치르고 그 중 높은 점수를 인정해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온갖 스펙을 얻는 데 필요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으며 기회균등의 측면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축소하거나 폐지해서 학부모의 버거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또한 저출산 대책에 나비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꽃과 나무가 없는 자연도 삭막하려니와 아이가 없는 세상도 그러하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은 정쟁만 일삼지 말고 저출산 정책과 더불어 입시제도에도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개모차가 아닌 유모차가 많아져야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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