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오롬으로 콩쥐처럼 버려진 밧세미오롬
쌍둥이 오롬으로 콩쥐처럼 버려진 밧세미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11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4. 밧세미오롬

밧세미오롬은 제주시 봉개동 산 3번지에 있으며 안세미오롬은 산 2번지이다. 밧세미오롬이 있는 제주시 봉개동 명림로는 번영로와 비자림로가 만나는 길이다. 이 길로 쭉 나가면 제주 4·3기념관으로 나가는 길인데, 4·3기념관 1㎞쯤 못 가서 안세미오롬 입구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면 밧세미오롬으로 바로 나가는 길도 따로 나 있다. 그러나 밧세미오롬 만을 가기 위해 찾는 탐방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제주에는 샘(세미)이 있는 오롬이 여러 곳인데 안세미도 그런 오롬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밧세미는 샘이 있어서 밧세미가 아니라 샘이 있는 쌍둥이 오롬 중 앞에 있는 오롬이 쌍둥이 오롬 중에 큰 오롬 격인 안세미오롬이고, 마을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밧세미오롬은 안세미 밖에 있고, 안세미 오롬 건너 편에 있으니 밧세미라고 불렸다.

이 두 오롬을 멀리 남쪽에서 바라보면 외형상의 모습은 두 오롬이 엇비슷해 보인다. 안세미는 눕혀놓은 멜론 같은데 밧세미는 멜론을 반으로 잘라서 세워 놓은 듯한 모양으로 비고 91m이다. 안세미는 잘 정리된 길에 야자 매트가 깔리고 정자도 세워지고 벤치도 놓였고 관리원들도 있어서 봉사하고 있으니 깨끗한 편이다.

밧세미오롬은 비고 92m로 안세미보다 1m 높으나 외형상은 별다르지 않다. 다만, 밧세미의 덩치가 조금 더 작으니 뾰족해 보인다. 안세미 서쪽으로 내려오면 바로 건너편 서쪽이 밧세미로 이어진다. 밧세미오롬을 오르는 곳에는 계단·목책·매트도 없고 초입에는 진흙이 물을 머금어서 도저히 오를 수 없어 보이나 자세히 보니 매듭이 굵지 않은 로프가 있어서 겨우 잡고 올라간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지….

줄을 잡고 밧세미를 오르는 길에는 우슬초가 열매 맺혀 바지에 달라붙는다. 그래도 비탈진 오롬 길에는 좁다란 소로가 눈에 보여서 그 길은 따라간다. 미끄러지며 등성이를 오르고 보니 오롬 남북의 모습이 전혀 다른 오롬같이 달라 보인다. 북쪽에는 팽나무와 몇 가지 낙엽수들이 보이고 남쪽은 삼나무들이 가파른 비탈에 꼿꼿이 서 있다.

밧세미 아래쪽에는 조릿대가 보이나 안세미에서는 꽤 보이던 도토리나무도·산뽕나무·곰솔도 보이지 않는다. 안세미오롬과 같은 나무로는 예덕나무·덧나무가 조금 보이고 북쪽에는 팽나무들이 꽤 많아 보이는 게 특이하고, 자귀나무는 보이지 않으나 머귀나무는 꽤 큰 놈들이 눈에 띈다. 이 오롬은 동절기가 아니면 길이 보이지 않으니 탐방이 어렵다.

정오를 넘기는 시각, 정상 서쪽으로 나가는데 붉은 단풍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12월이 되었는데…. 눈을 돌려 바라보니 마름모꼴 잎사귀에 분홍빛 열매를 달고 있는 참빗살나무다. 참빗살나무는 제일 늦게까지 단풍잎과 열매를 가지고 있는 노박넝쿨과 나무들이다. 바로 그 옆에는 푸른 넝쿨의 꼭 닮은 열매가 보여 살펴보니 상록의 줄사철이다.

이곳에서 두 나무가 이웃하고 있는걸 보니 참 정답다. 줄사철나무는 상록 넝쿨인 데 비하여 참빗살나무는 낙엽수이다. 두 나무는 특이하게도 언뜻 보면 분홍빛 붉은 열매인데, 자세히 보면 참빗살나무 열매는 네모지고, 줄사철나무 열매는 둥그런 편인 게 다르다.

안세미오롬 정상에서는 남쪽전망이 확 트여서 좋았다. 동쪽으로는 큰지그리·족은지그리·민오롬·바눙오롬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개오리·큰대나(절물오롬)·족은대나, 그 너머로 서쪽은 한라산 정상이고 그 앞에 오롬들도 많을 텐데 밧세미에서는 한라산이 반쪽이 조금 보일 뿐이다. 올망졸망 한라산맥을 따라 오르는 오롬들도 안세미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밧세미 북쪽은 이미 누렇게 시들은 덤불 가운데 팽나무들이 잎을 벗고 총총히 나목이 된다. 오롬 정상 너머로는 제주시가 아련한데 북동쪽으로는 제주 시내 동쪽 편이 더 가까이 눈에 들어온다. 사라봉과 삼양의 원당오롬이 보인다. 안세미에서 보는 밧세미오롬은 뾰족하고 남자다워 보였는데 밧세미오롬에서는 정상에서만 안세미오롬이 북쪽ㄹ이 조금 보일 뿐이다.

지난여름 끝, 안세미오롬을 오를 때는 등골에 땀이 흘렀다. 해 질 녘이라 밧세미까지 탐방하려다 못하고 미뤄둔 것을 소설이 지나고서 다시 찾는다. 밧세미를 내려와 비자림로를 거쳐 집으로 가는 길... 4.3 기념관을 지나는 데 까마귀 떼들이 한꺼번에 떠 올라 하얀 억새밭 위로 나른다. 그중 한 마리가 고목 위에 앉아 ‘깍 깍’ 운다. 한 해가 저무는 것을 아는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