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추울수록 봄은 더 푸르다는데
겨울이 추울수록 봄은 더 푸르다는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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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명예교수·논설위원

겨울이 추워야 봄이 더 푸르다는데 이번 겨울, 오는 봄은 어떨지? 

겨울이면 밤새 허리까지 수북이 쌓인 부엌문 앞 흰 눈을 치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선하다. 겨울밤에 온 가족이 화롯불에 둘러앉아 메밀떡, 좁쌀떡 굽던 모습도 소중한 어릴 적 추억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이제 아련한 추억일 뿐이고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이 어려운 따뜻한 겨울만 매해 반복되고 있다. 

봄은 푸릇푸릇 태어난 연한 새싹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는 색깔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봄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봄은 늦게 와서 잠깐 머물다 사라져 버리는 계절로 바뀌었다. 반면에 짧은 봄을 지나 여름은 더 무덥고 기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 이 모든 계절의 변화는 이미 우리 주변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인간이 편의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생산한 화석연료와 이로부터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원인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모든 환경, 생활용품이 다 화학물질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가 우리를 점점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와 함께 급속히 발전한 화학산업은 우리의 편의와 물질문명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가리켜 ‘케모포비아(Chemophobia)’ 현상이라 한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고 친환경 음식과 제품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신조어로 ‘노케미(Nochemi)족’이라 일컫는다. 화학물질에 대한 케모포비아는 이미 오래전에 예고되었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1960년대에 이미 살충제, 제초제의 무분별한 살포로 봄에도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 것을 예측했다. 벌레와 잡초를 방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합성한 화학물질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사용이 전면 금지된 DDT 살충제가 대표적이다. 우리 주변에 엄청난 양으로 뿌려진 DDT는 지금까지 인체에서 검출되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알래스카 에스키모인의 모유에서도 검출되고, 얼마 전에는 국내에서 판매 중인 친환경 달걀에서도 검출된 적이 있다. 이처럼 생체에 흡수된 화학물질은 분해되지 않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역시 대표적인 케모포비아 화학물질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고는 국내에서 발생한 최악의 참사로 2011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해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폐 섬유화 현상으로 이미 1800명 이상 사망했고 피해 신청자도 8000명 가까이 발생했다. 제주도내 피해자도 1만2000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가해 기업의 보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제주시 정실마을 주변에서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수백 마리가 집단으로 떨어져 죽거나 날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주도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가 무리로 폐사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원인은 독극물 중독이고 농약 뿌린 곡물을 떼까마귀가 먹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떼까마귀는 해충을 잡아먹어 농작물에 도움을 주는 익조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합성한 화학물질이 자연계 구성원을 폐사시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화학이 지구를 더 푸르게!’ 이 문구는 대한화학회 홈페이지 첫 페이지의 표제어이다. 화학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고 이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무색하게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는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겨울은 겨울답게 하얀 눈 수북이 덮이고 더 추워져서 봄이 더욱 푸르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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