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
내가 살았던 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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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내가 지금까지 70여 년 간 살아왔던 집을 헤아려 보니 결혼 후 20여 차례 옮기면서 살아왔다. 젊을 때는 집의 구조나 위치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형편이 나아지고 나서도 딱히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지은 집은 대지 300여 평에 건물은 2층으로 65평, 내가 살기에는 넓은 집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평생 집에 대한 생각을 해 온 터라 그 정도는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폭포가 있고 연못이 있는 집, 뒷마당에는 텃밭도 있다. 마당은 전부 잔디를 깔았다. 마당 구석구석에는 수선화를 가득 심었다.

집의 벽은 하얀색이었으며 유리창의 창문틀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지붕도 푸른색이 감도는 검 푸른색이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별칭을 지워졌다. 그 당시는 대문을 설치를 하지 않아 간혹 집이 예쁜지 신혼부부들이 우리 집에서 사진 촬영을 하러 오곤 했다.

집으로 들어서면 오른 쪽으로 거실이 나오고 거실 오른편에 부부의 침실이다. 대문 왼편으로 아들 방과 딸 방이 있었다. 아들 방 북쪽으로 부엌과 보일러실이 있었다. 거실 북쪽으로는 2층으로 가는 나무로 된 계단이 있었다. 2층은 나의 서재였다. 서재에서 의자에 앉으면 유리창 너머로 제주의 북쪽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였다.

40대 중반이었는데 사람들과의 친교를 많이 하던 시절이다. 50대 들어서서 그것이 심해졌다. 거의 매일을 밖에서 사람들과 친교를 했다. 오후 6시가 되면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에 오지를 않고 바로 시내에 나간다. 저녁 식사를 하고 7시부터는 약속이 된 분들과 하나하나 약속을 이행했다. 그러다 보면 새벽녘에야 귀가를 한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면 집이 목조인지라 술독을 목조들이 다 마셔버리는지 아침에 거뜬하게 기상을 한다.

출근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정에서 보내려는 노력을 한다. 집에 머물 때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몰두를 했다. 각종 화초들을 심고 나무에 전정을 한다. 점점 마당이 꽃과 나무로 무성해 졌다. 뒷마당의 채소들을 가꾸고 거름도 주고 비료를 주기도 한다.

여기에 산지 어언 15년째다. 어느 겨울인가, 집 앞이 눈 하얗게 쌓였다. 세상천지가 온통 눈으로 쌓였다. 우리 집의 위치가 400고지라 길에 다니는 사람과 차가 안 보인다. 시내에는 전혀 내리지 않던 눈이 여기에서는 흐드러지게 쌓인다.

음악학원 원장인 아내가 차를 운전해 출근했다. 그날 하루 종일 눈이 계속 내렸다. 나는 퇴근 후 집에 오다가 아랫마을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집까지 걸어 왔다. 시내에서 학원을 하는 아내가 걱정이다. 퇴근 시간이 넘어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전화를 하여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도무지 앞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마을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천천히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불빛이 보이고 아내가 운전을 하는 차가 보였다. 아주 엉금엉금 천천히 올라온다. 평지에서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걸어오고 있다. 나도 아내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이 미끄러워 손을 잡고 언덕 위를 걸어올라 간다. 아내가 학원에서 여기 까지 오는데 오늘의 경험과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를 한다. 나도 얘기를 거들고 언덕 위의 집으로 향한다.

살면서 이런 경험도 특이한 일에 해당할 것이다. 눈이 머리에 한웅쿰 만질 수 있을 만큼 소복이 쌓였다. 산 속에 살면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그래도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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