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을 알지 못 할 때는
내일 일을 알지 못 할 때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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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년 ‘푸른 용’의 해가 되었으니 용(龍)이야기부터 해야겠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일이다. 그 해 11월8일, 경복궁 경회루의 연못을 준설하는 과정에서 청동으로 만든 ‘시퍼런’ 청룡(靑龍)이 나왔다. 길이가 146.5㎝, 무게는 66.5㎏으로 위용이 대단했다. 학계에서 조사해보니 용의 몸체는 청동(靑銅)을 사용했지만 수염은 청동이 아니라 황동(黃銅)이었다.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연못에서 잘 지내는 용을 꺼내서 외환위기라는 국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여론에 밀려 결국 무속인과 풍수인들과 의논하여 그 용을 복제해서 연못에 다시 집어 넣는 촌극을 벌였다. 그 다음 실물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보내 전시하도록 했다.

이처럼 우리의 무속과 풍수 문화의 뿌리는 깊다.

▲무슨 자리든 한자리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믿음이 큰 탓일까.

우리 정치판에는 무속과 풍수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조상 묘터 옮기기도 그 중 한가지다.

지난 6일 출생 100주년을 맞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에 3번 떨어지고 4번째 도전에 나서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12월 19일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대통령은 대선 4수에 나서면서 1995년 전남 신안 하의도와 경기 포천에 있던 부모 묘를 경기 용인으로 옮겨 합장했다. 묘터를 잡아준 지관(손석우)은 “신선이 내려오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의 명당”이라고 했고 동교동계 인사들은 4번째 대선의 승리를 믿었다. 결과 역시 당선이었다.

그런데 이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김종필 전 총리, 한화갑·김덕룡 전 의원 등도 조상 묘를 이장했지만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선거철만 되면 ‘용하다’는 무속인들이 상한가를 친다.

관공서 출입을 동쪽으로 해야 길(吉)하다는 무속인 말을 듣고, 선거후보 등록을 할 때 화장실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책상 위치를 바꾼 경우는 흔하다.

정보 기관원들까지 몰래몰래 역술가에게 선거 예측을 묻고 중앙에 보고할 정도니까.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다. 4·10일 총선을 앞두고 유튜브에는 많은 무속인들이 나와 설치는 데 날마다 구독자수가 엄청 나다. 대통령 가족을 비롯해 여당 비대위원장과 야당 대표의 운세를 비교하는 것부터 신당을 만든다는 이낙연, 이준석 등에 이르기까지 안끼워 놓은 사람들이 없다. 정치권도 신경이 쓰여지는 모양이다.

▲해외 언론은 고학력에다 종교를 가진 정치인조차 무속에 관심이 적지 않은 데 대하여 이렇게 진단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사회 한국에서 샤머니즘은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다.”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미리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금 무속인의 유튜브 방송은 양극으로 갈라진 4·10 총선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실 내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내일 일을 알지 못할 때는 뜸을 들이며 견디는 것이 최선이라는 얘기가 있다. 희망의 긍정적 스토리도 쌓아가면서 시간에 투자하라는 말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봄철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보리라도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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