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길서 보이지 않고 찾는 이 없는 족은지그리오롬
큰 길서 보이지 않고 찾는 이 없는 족은지그리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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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족은지그리오롬

족은지그리오롬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115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오롬의 높이는 해발 504m, 비고 69m이다. 그렇다면 족은 지그리오롬은 해발 435m 높이(高地)에서 솟은 오롬이다. 또한 족은 지그리오롬의 주위에는 바눙오롬(교래리 산108번지), 큰지그리(교래리 산119번지), 늡서리오롬(교래리 산119m)에 둘러싸여 있다.

남조로 상에 있는 늡서리오롬은 족은지그리보다도 10m가 낮지만 돌문화공원에 들어서면 이쁘게 단장한 소녀처럼 다소곳한 모습이 눈에 뜨인다. 그러나 바농오롬(142m)과 큰지그리오롬(119m)은 번영로에 상에서도 그 존재성을 드러내 번영로에 있는 세미오롬(126m), 우진제비(126m), 거문오롬(112m) 등과 비슷해 덩치로 보아도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족은 지그리오롬은 덩치로 보거나 높이로 보거나 비교되지 않는 작은 오롬이다. 그러기에 알고 찾지 않는 한 그 존재를 찾기 쉽지 않다. 또한 큰지그리오롬의 입구는 유명한 교래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니 주차장이나 화장실도 있고 탐방로가 잘 되어 있다. 바눙오롬도 입구도 따로 있고 크지는 않지만 주차장도 있다. 그러나 족은지그리는 주차장도 화장실도 탐방로도 없고 찾는 이도 없는 편이다.

큰지그리오롬과 족은지그리오롬은 모두 말굽형굼부리를 가진 오롬들이다. 바눙오롬을 오르는 탐벙로에서는 족은지그리오롬이 큰 나무들 사이에서 보인다. 그러나 남조로에 들어서도 큰지그리오롬에서도 족은지그리오롬은 보이지 않는다. 족은지그리오롬은 바눙오롬 주차장에 들어서야 보인다. 또한, 남동향으로 열린 굼부리를 가지고 있지만, 굼부리의 깊이가 깊지 않은 편이고, 초원에 앉은 다소곳한 모습이나 실제로 그 안은 야생녀처럼 짓궂다.

또한, 족은지그리를 찾는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큰지그리↔족은지그리↔바농오롬으로 트래킹 하는 오롬꾼들이 아니면 좀처럼 찾는 이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족은지그리오롬 만을 탐방하기 위해서 찾는 이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족은지그리오롬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큰지그리오롬에서는 찾기 어렵고, 바농오롬을 들려서 찾아가는 편이 훨씬 쉽다.

또한 족은 지그리오롬은 탐방로가 따로 없다. 그러므로 탐방 시에는 목장 초지를 이용해야 하므로 초지가 자라는 기간에는 통과하기 쉽지 않다. 족은지그리오롬의 탐방기간은 초지가 베인 가을부터 봄까지 기간을 이용하는 게 좋다. 더구나 탐방로가 없으니 무성한 잡초가 통로를 막아서 하절기에 탐방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지그리오롬은 아직까지 그 명칭이나 유래가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제주오롬들이 제일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원조(1792, 정조16~1872, 고종8)가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서 제주오롬들에 대해 기록되면서부터이다. ‘탐라지초본’에서 지기리오롬은 지기리악(之奇里岳)으로 표기됐다. 그러나 ‘지기리’의 뜻은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이미 몇 년 전, 큰 지그리오롬을 소개하며 ‘지그리’에 대하여 밝힌 바 있다.

‘지그리’라는 말은 몽골어 ‘치게레이(Чигээрэй)’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 말은 몽골어로 ‘똑바로’라는 말이다. 제주인들은 이후 ‘치게레이→치게리→지기리→지그리’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처음 제주오롬을 소개한 이원조 목사는 이를 ‘지기리(之奇里)’라 기록했다. 이는 몽골어를 음독한 것으로 그 뜻을 잘 살린 그것 같다. 왜냐하면 한자로 ‘지기리(之奇里)’는 ‘오롬(岳) 안(里)이 뱀처럼 갈지(之)자로 기이(奇)하게 생겼다’는 뜻과 닮았다.

큰지그리오롬오롬이 소재한 곳은 교래곶자왈인데 비해 족은지그리오롬은 교래곶자왈 북쪽 끝 지점인 들판을 끼고 있는 곳에서 분출한 오롬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또한 바눙오롬과 큰 지그리오롬은 삼나무가 식재된 오롬인데 비하여 족은 지그리오롬은 제주산 잡목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오롬이다.

족은지그리오롬은 때죽나무·빗살나무·산뽕나무 등과 함께 산상·구지뽕·작살·가마귀쥐똥나무들이 엉클어졌다. 또한, 윤노리나무·청미래·찔레 등이 사방에서 옷을 잡아당기고, 부러진 나무와 가시덤불이 엉클어져 길을 막으니 탐방이 쉽지 않은 오롬이다. 동지를 맞으며 계속해 강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족은지그리를 품은 푸른 초원을 흰 눈이 덮으려 하나 그런 겨울에도 족은지그리오롬은 봉긋하게 작은 몸체를 드러내 보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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