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새해 첫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1.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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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여명이 시작되기 전 집을 나선다. 방한복을 두텁게 갖춰 입었지만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감싸 쥐게 한다. 하늘을 본다. 까만 하늘에서 별빛이 반짝이며 길을 안내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해맞이를 한다고 동쪽 바다로 나섰지만, 구름 없이 떠오르는 해를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오늘 또 해맞이를 나서는 건, 올 한해를 잘 살아 내자고 나 자신에게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제주에서는 일출을 보기 어렵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하는 아쉬움과 ‘그러면 어때,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한다. 일출 시각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바람은 없지만 시린 새벽이다. 방문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떡국과 커피로 새해 첫날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도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이 듬뿍 담겨 있어 이른 아침이지만, 떡국 한 그릇을 가볍게 비워냈다.

어둠이 걷히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사람들은 일출을 기다리며 동쪽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다. 백사장에도 사람들이 가득하고 건너편에 보이는 섬 우도는 길게 누워 저마다의 소망을 담은 듯 화려하게 반짝인다. 선착장 한쪽에서는 마을 주민 두 분이 정성스레 제물을 차려 놓고 기도한다. 준비한 제물을 바다에 코시하며 올해에도 무사히 물질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청도 잊지 않는다. 매해마다 물질을 하다가 물숨을 놓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었는데 기도하는 마음이 옆에 있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 간절한 마음이 꼭 이루어졌으면 싶은 새해 첫날이다.

그동안 게을러 하지 못했던 운동을 올해는 꾸준히 하게 하고,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책을 읽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나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불편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소서. 그동안은 작심삼일 이래저래 실천을 못 했지만, 새해에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겠다는 자신을 다독이며 나만의 소망을 다짐해 보는 새해 첫날이다. 올해 일출은 보진 못했지만, 아쉬움은 언제나 다음날의 희망이라고 위로하며 밝아오는 새해를 힘차게 맞이한다.

새해에는 조금 더
침묵해야겠다

눈 내린 대지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처럼

새해에는 조금 더
정직해야겠다

눈보라가 닦아놓은
시린 겨울 하늘처럼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 기대로
세상에 새기려 한 대문자들은
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려도

박노해 ‘새해 새 아침에’ 중에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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