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아름다움 뒤에 가슴 아픈 기억을 지닌 포구
천혜의 아름다움 뒤에 가슴 아픈 기억을 지닌 포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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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사건의 슬픈기억이 남아있는 안도(安島)
이야포 포구, 어렵게 이곳 포구에 머문 피난선에 미군기 4대의 기총사격으로 20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야포 포구, 어렵게 이곳 포구에 머문 피난선에 미군기 4대의 기총사격으로 20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 기묘하게 형성된 갚은 만(灣) 눈길

금오도 남쪽 끝에 딸린 안도(安島)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로 섬 면적은 3.96㎢, 해안선 길이 29㎞, 최고봉은 해발207m의 성산이 있다. 섬 모양이 기러기같다 하여 안도(雁島)라 하였으나 안도대교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기묘하게 형성된 깊은 만(灣) 안쪽으로 선박이 안전하게 피항할 수 있어 1910년 편안할 안(安)자를 써 안도로 바뀐 것이다.

2010년 금오도 장지와 안도 간 360m 안도대교가 개통되어 금오도 비렁길을 찾는 관광객은 차를 가지고 직접 안도까지 올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안도는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교를 지나 오른쪽으론 서고지 마을로 가고, 직진하면 멀지 않은 곳에 안도리 선착장이 있는 안도 마을이다. 깊은 만 때문에 길을 돌다 보면 오른쪽에 ‘이야포 평화공원’을 볼 수 있다.

우선 이 섬에서 가장 상징적인 안도 선착장을 먼저 들렀다. 밖에 새로 만든 선착장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천혜의 옛 포구를 찾았다. 커다란 두 바위 사이로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서 안쪽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 들어서면 S자 형식의 폭넓은 천연호수 같은 포구에 크고 작은 어선들이 즐비하게 세워졌다. 포구 옆 마을은 한반도를 닮은 어촌 풍경에 넋을 잃게 한다. 천혜의 아름다운 포구 전경을 볼 수 있게 높은 당산 공원인도교가 설치됐다. 인도교서 내려다 본 포구 모습에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통영의 욕지항과 군산의 어청도항과 함께 안도항은 전국 최고의 자연 양항(良港)이라 한다.

작은 길 따라가다 보니 동고지 마을로 가는 구불구불 작은 고개를 넘어 백금포 해수욕장, 많지 않은 관광객과 마을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도에는 두 개 해수욕장이 있는데 또 다른 해수욕장은 이야포 해수욕장으로 몽돌해수욕장이다.

안도 중심마을, 천연 호수같은 포구가 S자로 형성됐다.
안도 중심마을, 천연 호수같은 포구가 S자로 형성됐다.

# 민간인 희생 추모하는 이야포 평화공원

이야포 포구로 가는 길에 이야포 평화공원에 들렀다. 이야포에 어떤 사연이 있어 평화공원을 세웠을까 궁금했다. 안도 포구 안쪽에 해양안전 교육장 위, 이야포 해변 사이에 있는 이야포 평화공원은 추모비와 사건기록, 그리고 시비가 세워졌다. 안도에 오기 전 여수 연안여객터미널 앞에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3주년 민간인 희생추모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무슨 사건이었을까,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야포 사건은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해상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피난선을 미군기가 기총사격해 승선자 250명 중 다수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규모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다.

피난선은 부산에서 출발하여 통영과 욕지도를 거쳐 8월 2일 여수시 남면 이야포 포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3일 아침 미군 폭격기 4대가 나타나 태극기를 단 피난선에 무차별 기총사격을 가해 150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아비규환 현장으로 돌변했다. 이후 폭격을 받은 피난선은 총에 맞아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에 기름을 부어 3일 동안 밤낮으로 불타 바다에 수장되고 일부는 산에 매장됐다고 한다.

미군 폭격기는 8, 9일에도 남면 횡간도 앞바다 두룩여 해상에서 조기잡이를 하는 100여 척 어선들을 폭격해 수십명이 사상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진실화해 진상조사위원회는 미군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해방’그 만세 소리/삼천리 방방골골/심장에 도달하기도 전/다시 나부끼는 점령군 깃발/불가침 성역의 나라/아메리카,미국/전쟁포화 그리고 8월/점령군의 폭격기/이야포 하늘을 포효하고/굉음의 붉은 파편/그 파도를 물들인다/그 바다를 삼키었다/울음조차 숨소리조차/그 깃발아래 허우적일때/한 소년이, 노인이/오목가슴 피토하여/불가침 성역의 나라를/노도(怒濤)한다

주철희 시비가 공원 가운데 세워졌다.

한 쪽에는 당시 희생된 유족의 증언도 있다. “이곳 이야포는 조용하고 포근한 곳이라 우리는 배에서 빨래도 널고 아버지가 지으신 쌀밥도 먹었어요. 어린 제가 생각해도 이젠 우리는 안전하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배 안과 밖에서 엄청난 큰 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났어요. 밖에서 포격하는 비행기는 미군 비행기였어요. 우리 배는 싸우는 배가 아닌 피난선이라 태극기도 걸려 있었어요”

비석에 새겨진 기록과 이야포 사건 전말을 알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부의 승인 하에 폭격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피난선은 제주도로 가기 위해 머물던 중이었는데, 가슴 아픈 이야포 이야기를 생각하며 안도를 떠난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이야포 평화공원.
이야포 평화공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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