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이 없는 희생자 3547명
유족이 없는 희생자 3547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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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전 성공회대 교수·논설위원

그 해 겨울은 제주도민들에겐 너무나 춥고 힘들고 어려웠다. 50년 이상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빨간색 굴레를 뒤집어 씌워 몰살을 당했음에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지냈다. 강경 토벌을 한다면서 일으킨 대학살의 광풍을 피해 한라산 쪽으로, 거친 들판으로, 깊은 동굴과 밀림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섬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마을집들이 불에 타고 부모형제 자매와 이웃들이 한 순간에 몰살을 당했음에도 아이고 곡소리도 내질 못하고 숨죽여 있어야만 했다. 2003년 대한민국은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제주 4월 3일 대사건(Jeju April Third Events) 진상 조사 보고서를 내 놓았다. 그리고 그 즉시 국가를 대표해노무현 대통령이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 즈음에 이르러서야 제주도민들은 비로소 빨간 딱지의 불명예로부터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4월 3일 대사건은 1947년 3월 1일에 일어난 관덕정 학살로부터 7년 7개월 동안 제주 주민들이 희생당한 거대한 규모의 학살사건이었다. 어떤 이는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소요 사태에 국한하여 그저 사 점 3(4·3)이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현행 제주 4월 3일 대사건 관련 특별법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의 관덕정 학살로부터 시작되어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를 거쳐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섬에서 일어난 쌍방사이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수 만인의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대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시기 구분을 한다면 미 군정시기에 일어나 이승만 정부시기에 걸쳐서 71개월 동안 일어난 제주도민 수 만인의 희생된 대사건이다. 2000년부터 4월 3일 대사건 관련 특별법을 시행함으로써 한국에서는 제주 4월 3일 대사건의 전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상 규명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희생자와 유족의 범위를 확정하였다. 2021년 한 해 동안에 이루어진 이 4월 3일 대사건 관련 특별법의 전부 개정과 일부 개정을 통해 희생자에게 국가 공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 전보(塡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이 전부 개정과정은 말 그대로 진땀나는 논의과정의 연속이었다. 절차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통합, 추진해야만 했다.

2020년 6월 현재 희생자로 결정된 1만4533인 가운데 유족이 결정되지 않은 희생인사가 3547인이나 집계됐다. 너무나 많은 수의 희생인들이 피해배상을 아예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전체 희생자의 24.4%에 이르는 너무나 많은 규모였다. 즉 희생 인사 3547인은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으로서 희생인의 제사를 치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희생인의 친족이 모두 사망하는 등 어떤 연고인도 없는 희생인사에 대해 현행 4월 3일 대사건 관련 특별법은 개별적 배상이나 보상을 시행하는 것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희생자에 대한 개별적 배상이나 보상을 할 수 없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후손이 없는(無後) 희생인사를 위한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이제라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제16조 제7항과 제22조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면 후손이 없는 희생자를 위한 공동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제16조(보상금) ⑦ 국가는 제3항부터 제5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상속인이 없는 희생자를 추 념하기 위하여 희생자를 위무하는 사업,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고양하는 선양사업 및 공동체 회복사업 등 국내외에서 추진되는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

제22조(공동체 회복 지원을 위한 의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 및 유족의 신체적ㆍ정신적 피해 치유와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행기 정의 확립에 어떤 차별이나 배제가 있어선 안된다. 법 앞에 평등이야말로 정의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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