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지도층 부끄럽게 하는 ‘얼굴없는 천사’
사회지도층 부끄럽게 하는 ‘얼굴없는 천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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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불우이웃을 위해 금품을 전하는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거르지 않고 나타난 것은 세밑의 한파를 녹이는 훈훈한 소식이다.

제주시 오라동의 한 주민은 올해도 가마솥에서 직접 끓인 500인분 팥죽을 오라동주민센터에 내놓았다. 이 주민의 연말 ‘팥죽 나눔’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오라동은 팥죽과 김치, 양말을 관내 7곳 마을 경로당과 독거노인 가구에 전달했다고 한다. 주민센터측에 따르면 이 주민은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고있다고 한다. 제주시 용담1동주민센터에도 이름을 밝히지않는 주민이 찾아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달라며 쌀 10kg들이 100포대를 내놓고 갔다. 이 주민의 ‘쌀 나눔’도 수년째 계속되고있는 데, 주민센터는 관내 한부모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제주시 아라동을 비롯한 다른 읍면동에서도 지역 거주민들의 얼굴없는 ‘나눔’선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온정이 메말라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세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이달 초부터 다음달까지 두 달 동안 모금을 하고있지만 수은주 상승이 예년보다 못하다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는 세태도 그렇지만 미미한 금액을 내놓고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는 더욱 볼썽사납다. 수 년전의 기부를 마르고닳도록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뉴제주일보가 ‘얼굴없는 천사’의 신원을 찾아내 공개할 수도 있지만 그가 진정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아 사회 지도층일수록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 기부자 중 20%가 총 기부액 가운데 80%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층 참여가 활발하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다.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이 많은 사회지도층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얼굴없는 천사는 행동으로 일깨우고 있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세상 시끄럽다’고 불평이나하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던지는 격조높은 충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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