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쓴 글씨
거꾸로 쓴 글씨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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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제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회에서 탐방에 나섰다. 4.3테마를 가지고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며 금악으로 이동했다. 금악 곶자왈 쪽에는 잃어버린 마을이 여러 군데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빌레가 많다.

금악에는 탐나라 공화국이 상징으로 조성되고 있다. 하마터면 중국인에 팔릴 뻔한 곳이다. K회장은 남이섬을 무에서 유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무슨 업이 있기에 여기까지 날아와 무언의 봉사를 하고 있을까. 로비 입구에 병풍처럼 세워진 장식품이 눈길을 끈다. ‘하늘구름 받아모아 빗물쓰고 돌가루는 점토섞어 그릇쓰고 헝겊조각 액세서리 꿰매쓰고 전깃줄도 마대끈도 이어쓴다. 말장난에 글장난에 상상쓰고 토막나무 갈고닦아 공예쓰고 주방기구 버린그릇 깜짝쓰고 쓰레기는 쓸애기로 고히 쓴다. 잔돌멩이 요리조리 장식쓰고 벽돌잔재 깨진 블록 깔아쓰고 폐 배터리 태양패널 전기쓰고 폐식용유 용도변경 비누쓴다.’ 면면이 새겨진 글귀가 4.4조가 되어 울림으로 다가왔다.

생각의 전환은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몇 년 전에 책 몇 권만 가져오면 무료입장하는 자체 여권을 만들더니 모은 책은 ‘책 무덤’이라는 칭호로 장식되었다.

모여진 폐기물은 재탄생하여 형태가 다른 조각품으로 장식했다. 중문에 있던 풍력발전기가 고장 나자 탐나라 공화국에 옮겨온 후 새로운 창작물이 되었다. K회장은 연구하다 두 쪽으로 자르고 AI가 설명하는 새로운 아이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돌담을 배경으로 한라산에서 용암 분출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고도의 컴퓨터 사용에 저비용으로 예쁘게 조성했다. 

근래에는 쓰다 버려진 냄비나 프라이팬을 모았다. 검은 프라이팬 앞뒤는 기구를 사용하여 깨끗하게 벗겨내니 반짝이는 물건이 되었다. 여기에 작가의 특성인 모양을 내고 구멍을 뚫자 조명등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며 갤러리가 탄생하였다. 벽에 새겨진 하나의 큰 그림을 조각내어 퍼즐 맞추기를 하면 창작품이 된다.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모두가 빨려들었다. 

로비에 진열된 책자 하나를 구매했다. K회장은 나와 대화하며 거꾸로 그림을 그려주었다. 눈을 마주하며 말하는 입과 글 쓰는 손은 뇌가 분리되듯 각자 따로 노니는 듯하다. 책을 거꾸로 잡고 매직으로 그려가는 자세는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바르게 그리는 그림인데 작품이었다. 종성 중성 초성으로 ‘님생선 선미고’로 썼지만, 상형문자처럼 기어간 그림이다. 책 표지에 거꾸로 쓴 글씨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혼자만의 착안이었다.

자연이 캠퍼스가 되어 마음껏 창작활동을 풀어놓는 그분이 존경스럽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재활용 작품세계가 날개를 달고 날듯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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