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 강문칠 가곡집 제2권
그때, 그 시절 - 강문칠 가곡집 제2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2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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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때는 1988년, 내가 대학원 졸업을 해 대구에서 머물고 있을 때다. 그 당시에 ‘한소리 음악회’라는 음악 서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서클의 구성멤버는 작곡, 성악, 연주, 기획자 등 다양한 음악 분야의 사람들이 활동했다. 해마다 연주를 3·4회를 할 정도로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회가 있던 날, 아는 분이 음악회를 마친 나에게 잠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동행을 한 여인이 나에게 시 한편을 주면서 곡을 써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 물감’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시의 내용이 왠지 평범하지가 않았다. 사정을 듣지 않은 채 곡이 완성이 됐다. 시를 건네 준 분을 만나서 우선 곡을 들려 들였다. 그러면서 그 분에 관한 얘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심사임당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여류 서예가로 활동을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그는 이 곡을 가지고 시인이 살고 있는 서울에 가서 발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른 채 서울로 올라갔다. 피아노 반주자는 서울 한 대학의 음대 교수로 재직 그 시인의 딸이 해주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차를 타고 어떤 집에 도착했다. 2층짜리 건물인데 들어서니 거실에서 그 시인이 신 여인이 우리를 반겼다. 안내에 따라 2층에 올라 가 보니 식당이었다. 상이 빈자리가 안 보일 정도로 음식을 꽉 채운 모습이 꽤나 정성을 쏟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고향이 제주도라고 해서 제주 옥돔을 준비를 했어요’라고 했다. 억양이 경상도였다. 풍기는 모습은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이었다. 신상임당상을 수상 하셨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식사가 끝나고 이제는 손님들이 기다리신다면서 지하로 내려 가신다. 지하에는 넓은 공간인데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져 있었다. 60대 여성들 10여 분이 앉아 있었다. 나와 성악가를 소개하고 그분들 한 분씩을 소개했다. 생각하지 못한 그 분들의 면모는 모 대학교 총장 부인, 모 장관 부인, 모 국회의원 부인, 모 그룹의 회장 사모님 등등 모두 국내의 최고의 직업을 가진 분들의 사모님들이었다. 정작 나에게 식사를 제공하신 분의 정체는 아리송했고 그것을 묻지를 못했다. 피아니스트인 따님인 모 대학교 음악대학의 피아노과 교수는 나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을 여기에서 소개를 받았다. 이윽고 나의 곡을 연주하는 시간이다. 이

곡은 가사의 내용처럼 사연이 있게 작곡됐다. 성악가가 최선을 다해 연주를 했다. 곡이 끝나고 시인께서 곡에 대한 감상을 여러분들께 하셨다. 말씀 하시는 모습이 한국에서 뛰어 난 현모양처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나만을 데리고 1층으로 안내를 했다.

안방을 안내를 했는데 거기에는 사자상(獅子像)을 한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분을 소개를 하는데, 한국의 정치사에서 손꼽을 만한(후에 국무총리를 하였음) 사람이셨다.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 분의 뒤에는 한글로 옷장 문에 음각(陰刻)으로 된 대형 옷장에 한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면서 사모님께서 그 시를 곡을 붙여 달라고 하신다. 그러겠다고 말하고는 그 시를 적었다. 그 시의 제목은 ’푸르런 마음‘이라는 시인데, 한국의 남북통일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시였다.

이러한 곡들로만 수록이 된 강문칠 가곡집 제2권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의 이야기인 젊은 시절의 추억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탓인지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귀한 만남의 내용은 그만 하련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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