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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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어수선한 세상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과 반대로 현대인은 많이 알아서 더 불안하고 외롭고 마음 둘 데를 찾지 못 한다.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 저 멀리 태양과 우주도 영원하지 않고 생로병사가 있는 생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언제든 파괴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가진 지구의 인류 문명은 대기 환경 변화와 AI로 대표되는 기술 변화라는 2가지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고 전쟁 역시 곳곳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현대 문명은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폭주기관차로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모르면 불안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지구 곳곳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만일의 경우를 알고 겪나, 모르고 겪나의 차이일 뿐이다. 

제주 출신 영화평론가인 김종원 선생이 최근 ‘시정신과 영화의 길’이라는 회고록과 시집을 동시에 냈다. 86세의 나이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제주의 어린 시절과 청춘의 기록이 인상 깊은 책이다. 

그의 시집은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과 반비례로 읽는 이의 심정을 차분하게 한다. 그 중 ‘인생’이라는 짧은 시가 여운을 남긴다. 

“바다에 가면 산이 그립다. 그러나 그 산에도 마음은 머무르지 않는다, 인생은 뭔가를 찾다가 조용히 떠나는 것.” 

어수선한 세상에 위안이 되는 책이 또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의 구술을 종교 전문기자 김한수가 옮겨 적은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라는 책이다. 

경허 스님과 성철 스님으로 대표되는 조계종 종정은 대대로 수행을 중시하는 이판 스님을 모신다. 수행승들 대신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사판 스님들의 대표는 총무원장이다. 수행을 중시하다 보니 수행을 돕기 위해 행정살림을 분리한 구조이다. 경전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는 일은 양쪽 모두의 공통사항이다.

이 책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는 건 기존의 종정 스님과는 현재의 성파 스님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인 그는 불교를 내세우지도 않고 설법을 하거나 강론을 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일하며 공부하고 공부하며 일하는 삶을 강조한다. 

통도사 종손을 자처하여 수련처소를 넓히고 부지런히 일하며 공부한 덕에 전통식품인 된장 등과 옻칠 작품을 하며 스님이자 작가, 경영자로의 변신을 수시로 했다. 심지어 법정 스님의 대표 철학인 무소유 정신도 거부한다. 존재 자체가 소유라, 특히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문화의 복원, 작품에는 소유와 욕망을 드러낸다. 물론 고락으로 분별하지 않는 소유와 욕망, 그저 일하며 공부하는 데가 행복이고 열반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내일을 몰라서 불안하고 알아서 더 두려운 현재를 사는 대중에게 일하며 공부하고 공부하며 일하면 그게 가장 최상의 수행이요, 깨달음의 경지라는 쉽고 가까운 얘기에 절로 귀가 솔깃해진다. 

“지금도 나는 초보라. 지금도 모르는 것뿐이고.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할 뿐입니다. 아직 안 본 것도 많고, 안 들은 것도 많고, 나날이 새로운 것들인데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말인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과 비교되며 더 경건해지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어수선하고 위험해 보이는 오늘이라도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는 오늘이 초보인 것처럼 나날이 배우고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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