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하나로 이어진 작지만 아담한 두 섬
대교 하나로 이어진 작지만 아담한 두 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0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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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일찍 비치는 조발도(早發島)와 섬 두 개로 이뤄진 둔병도(屯兵島)
조발도와 둔병도를 잇는 대교.
조발도와 둔병도를 잇는 대교.

# 비스듬한 경사에 집들이 들어선 삐둘이 마을

예전엔 육로로 고흥에서 여수를 가려면 벌교와 순천을 거쳐 아주 먼 길을 돌아가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고흥과 여수를 잇는 팔영대교가 개통되면서 고흥과 여수는 30분거리가 됐다. 이 대교는 순천만 아래 쪽에 있는 낭도와 적금도, 둔병도, 조발도 4개의 섬을 잇는 대교로 오랜 공사 끝에 개통돼 일대 섬들이 새로운 관광지가 되고 있다. 고흥 방면으로 팔영대교, 적금대교, 낭도대교, 둔병대교, 조발대교를 거치면 여수 화양면에 도착한다.

조발도는 여수 화정면에 속한 섬으로 면적 0.72㎢, 해안선 길이 7.8㎞, 최고봉 171.2m로 작은 섬이다. 물안개가 자욱한 새벽, 조발도를 찾았다. 일찍 해가 비추어 주는 섬이라 새벽 어촌모습을 상상하면서 대교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는데 길이 끝나자 급경사다. 마을로 가는 길은 가파른 좁은 시멘트 길이라 잘못 찾은 것인가 서성거리고 있을 때 새벽 산책을 나온 주민을 만났다. “여기가 조발도 맞습니까”, “예, 조발도요. 이 새벽에 무슨 일로 오셨소”, “섬 구경왔습니다”, “쬐그만 섬 뭐 볼거나 있것소. 아래 내려가면 선창이요”,

가파른 마을 안길 따라 내려서자 아담한 포구다. 조발도 포구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해가 뜨면 섬 전체를 일찍 밝게 비춘다 하여 일찍 조(早), 시작할 발(發)자를 써 조발도라 부르는 이 섬은 예전에는 교통편이 어려워 오지에 속했으나 지금은 화양반도 도로 사정이 좋아졌고, 또 여수와 고흥을 잇는 대교가 섬을 거치고 있어 오지 섬에서 육지가 된 섬이다.

포구에서 바라본 마을, 지형이 경사진 곳에 집들이 들어섰고 주변으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다. 한 여행객이 남긴 글에 ‘삐뚤이 동네’라 썼는데 뭐가 삐뚤인지 알 수 없었는데 조금 멀리서 바라보니 비스듬한 경사지에 지어진 집들이 그런 형태인 듯 하다. 마을 담벽에 목수 농부 김장일 시인이 쓴 ‘조발도 일기’가 눈길을 끈다.

잘 놀다 가소/너도 떠나 불고/나도 떠나 불고/마지막 객선까지 떠나 불고/잘 놀다 가네/모진 비바람과 거친파도 앞에/물러섬 없이/천년의 가난과 무관심/저머다의 온갖 슬픔과 기쁨을 품에 안은체/묵묵히 바다에 떠 있는 섬/나가 나가 말이요, 나는 영영 내 자리 지킬라요/첫 새벽 동녘하늘 싯 붉게 붉게 타오르는 그곳/조발도/모두들 잘 오셨소.

높은 경사지에 있는 집 벽면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이 크게 쓰여있다. 작지만 아담한 삐뚤이 마을 조발도. 나그네 눈에 비친 모습은 한 마디로 참 소박한 마을인 듯 하다.

삐뚤이 동내로 유명한 조발도 선창과 마을.
삐뚤이 동내로 유명한 조발도 선창과 마을.

# 임진왜란 당시 수군이 주둔했던 곳

조발도에서 나오면 바로 둔병 대교 중간지점에 둔병도(屯兵島) 입구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 좌수영 산하 수군이 고흥 방면으로 가면서 일시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둔병’이라 부르는 섬이다. 여수시 화장면에 딸린 이 섬은 면적 0.62㎢, 해안선 길이 7.13㎞로 조발도와 크기가 비슷한 섬이다. 해안을 끼고 긴 시멘트길 끝 지점이 마을이다.

버스정류장과 쉼터 옆에 할머니 두 분이 파를 다듬다 나를 보자 “왠 새벽 손님이요. 버스가 올지 모르지 차는 저쪽에 세워요. 어디서 왔소”, “제주도서 왔습니다”, “워메 제주도요. 겁나 좋은 곳서 왔소. 나는 제주도 한 번도 못 가 봤소. 뭐하러 왔소”, “돌아다니다 들렸습니다. 여기는 방풍을 많이 심나 봅니다”, “그렇지라. 다른 농작물에 비해 피해도 적고 수입도 괜찮아 온 섬에 방풍을 심지라. 예전에는 고구마를 많이 심었는디”

길이 끝인 줄 알았더니 너머로 섬 끝자락에 포구가 있다. 배가 한 척도 없는 것이 어제 설치한 그물 거두러 간 모양인지 섬이 너무 조용하다. 그 흔한 개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둔병도 앞에 있는 하과도로 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 자 해안도로다. 높은 언덕에 올라서니 둔병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 뒷산 숲이 우거진 곳이 둔병도 당집이란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금도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나이가 많고 가장 깨끗한 사람을 제관으로 뽑아 정갈하게 준비한다. 뽑힌 제관은 고기를 먹지 않고, 초상집이나 불이 난 곳에도, 싸우는 곳에 가서도 안 된다. 때문에 둔병도는 바다에 나가 사고로 죽거나, 전쟁에 나가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작지만 아담한 섬, 이제 대교가 개통됐으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고, 마을주민들 소득이 높아지면 제주도 한 번도 못 와 봤다는 아까 그 할머니, 제주도 관광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할머니를 찾았으나 자리에 없다. 파를 다 다듬고 집에 갔나 보다. 차에 있는 밀감이라도 드릴걸. 제주도 냄새라도 맡아보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섬을 떠난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둠벙같은 해안이 있는 섬, 둔병도는 두 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둠벙같은 해안이 있는 섬, 둔병도는 두 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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