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라봉이라 불려진 감귤박물관이 있는 도라미
월라봉이라 불려진 감귤박물관이 있는 도라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0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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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효돈 도라미
동쪽 효돈순환로서 본 도라미는 한라산을  향해 도라앉았다.
동쪽 효돈순환로서 본 도라미는 한라산을 향해 도라앉았다.

서귀포시 신효동 산 1번지에 ‘도(이하 ㄷ+아래아)라미’라는 오롬이 있다. 서귀포시에는 12개 동내에 37개 오롬들이 있는데, 그중에 라미는 해발 117.6m, 비고 63m로 높지 않은 오롬이다. 그러나 면적은 498.972㎡로 서귀포에서 5번째인 작지 않은 체구다. 면적이 작지 않은 만큼 라미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제주도 여러 개 오롬들 중에 보기 드문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도라미를 탐방하기 위해 입구를 찾는데 한참 맴돌았다. 동쪽으로 효돈순환로, 서쪽으로는 상효로, 북쪽으로는 월라봉로가 있어서 쉽고도 어려운 길이다. 정확한 장소에서 모이고 탐방을 시작하려면 기준점을 ‘서귀포감귤박물관’으로 잡는 게 좋을 것이다. 도라미로 검색하면 각기 다른 곳을 가리키므로 입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또한, 도라미(도라미, 월라봉)로 검색해도 반듯이 주소를 확인해야 한다. 똑같은 이름의 월라봉이 안덕면에도 있다. 필자는 서귀포시에서 출발하여 북쪽 길로 도라미를 찾는데 몇 번 맴돌던 중에 게이트볼을 치는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윗길로 라미로 갈 수 이수꽈?” 물으니 “아직껏 한 번도 도라미를 올라보지 못 하였다”고 한다. 다른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삼춘, 무사 도라미엔 햄수꽈?” 물으니 “오롬이 한라산 쪽으로 라앉으난 라미주게!”

할머니는 “조금 더 가면 절간이 보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길이 좋다” 하여서, 가르쳐 준 그 길로 나가니 거기에는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고 공연무대도 만들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키 큰 후박나무·참식나무·담팔수 등이 쭉 둘러 심겨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있어서 천국이 따로 없어 보인다. 오른쪽으로 나가니 팔각정 정자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남쪽 감귤박물관 있는 곳도 또 하나의 도라미의 굼부리다.
남쪽 감귤박물관 있는 곳도 또 하나의 도라미의 굼부리다.

조금 더 가니 작은 바위들이 파랗게 둘러싸여 있어서 무엇인가 했더니 서귀포 절오롬에서만 보이던 ‘석이’라는 고사리 종류 양치식물이다. 2~3㎝쯤 되는 데 하나의 잎자루에 5~7㎝의 잎을 하나씩 달고 있다. 석이는 서귀포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종이다. 한국(육지부)에서는 이미 가을의 중반인데도 서귀포 도라미는 석이뿐 아니라 모든 수목이 아직도 푸르다.

제주도에는 같은 이름, 비슷한 이름의 오롬들이 너무 많다. 애월읍 어도오롬은 ‘도노미’라 불리고 안덕면 감산리 1148번지에도 ‘월라봉’이라 불리는 오롬이 있는데 제주어로는 ‘도래오롬’이라 유사하지만, 전혀 다르다. 또한, 서귀포 중문동 산1번지에도 ‘도래오롬’이 있고, 같은 이름으로 애월읍 어음리 산 25번지와 봉성리 산1번지에도 있으니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신효리 ‘도라미’의 명칭은 의견이 분분하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라미는 제주어 ‘박쥐를 말한다’는데 필자가 오롬을 동서남북으로 둘러보고 올라서 살펴보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상효리와 신효리로 나뉘는 서남쪽 삼거리 갈림길에서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머리, 남동쪽과 남서쪽 두 봉우리는 박쥐의 날개(다리)를 세워 놓은 모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게이트볼장에서 만났던 90살 넘긴 할머니에게 “박쥐를 닮아서 박쥐를 말하는 제주어 ‘도라미’라 하더다” 했더니 할머니는 극구 반대하셨다. “나는 이 동네에서 낳고 평생 살아도 이제껏 그런 말은 선생에게서 처음 듣는 소리”라 하였다.

두 번째는 ‘바위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라봉(月羅峰)’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월(月)은 달, 라(羅)는 ‘새그물 라’로 ‘깁다·벌리다’라는 뜻이다. 도라미를 탐방하던 날 오롬 동남쪽에서 80대 남자분을 만났다. 그분에게 “이 오롬의 뜻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는 ‘돌(이하 ㄷ+아래아+ㄹ)암’에서 온 말인데 ‘돌은 달, 람(암)은 바위’인데 ‘라’로 쓰였다고 한다(‘미’는 제주어로 오롬이다.)

이 오롬 명칭인 도라미는, 돌=달=월(月), 라는 라(羅)로 제주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임을 모르고 한자로 해석하므로 잘못된 것이다. 동쪽 효돈순환로는 바닷가 신효리에서 산간마을 상효리로 나가는 길이다. 거기서 도라미는 아름다운 수석 야외전시장 같았다. 그 바위 위로 달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차 없이‘암(달과 바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한자를 빌어 음을 차용하여 랑쉬를 월랑봉(月朗峰), 윤도리를 은월봉(隱月峰)이라 쓴 것과 같은 오류들이다.

세 번째로 라미 남서쪽은 완만하다가 점차 높아져 놀이터 같은 굼부리가 몇 곳이 있어 혼합형 오롬이다. 계단을 타고 정상(정자)을 오르면 매우 급하게 동쪽으로 향하는 내리막이다. 신효~상효 간 순환로를 바라볼 즈음, 수석 같은 바위들이 보인다. 도라미는 동북쪽 한라산을 향하여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90살 할머니가 말하던 도라미의 실체가 확인된다.

서쪽 굼부리(놀이터)에서 본 63m 도라미 정상 위의 정자.
서쪽 굼부리(놀이터)에서 본 63m 도라미 정상 위의 정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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