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vs 등
갈 vs 등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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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회장·논설위원

칡과 등나무는 모두 식물 분류학상 콩과의 다년생 식물이다. 이렇듯 사촌지간인 칡과 등나무는 모두 덩굴식물로서 지주식물을 감고 올라가며 줄기를 지탱하는 특성이 있다. 이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는 높은 곳에 보다 빨리 올라가 광합성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덩굴식물은 식물 종류에 따라 줄기가 감아 올라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는데, 칡은 지구 자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지구 자전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한 나무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자기의 정해진 방향으로만 감아 올라가 얽히고설키며 짓눌러 결국 서로의 생장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 치열한 경쟁과 갈등은 비극적이게도 두 식물 중 한 식물이 고사한 후에야 비로소 끝을 맺는다.

이렇듯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들이 충돌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칡과 등나무처럼 복잡하게 꼬이고 뒤엉켜 화합하지 못하는 형국을 일컫는다.

인류 역사를 뒤돌아 보면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 요소이다. 또한 갈등이 없는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오히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는 더욱 성숙해지고 견고히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이 도를 넘으면 상대를 증오하게 되고, 그 감정이 집단화되고 고도화되면 폭력과 심지어 전쟁에까지 이르게 한다.

‘현실적 갈등 이론’에서는 사회적 갈등의 발생 원인을 ‘돈, 명예, 권력, 지위와 같이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현대사회는 세상을 대립구도로 범주화하려는 경향이 짙다. ‘남과 여, 자본가와 노동자, 보수와 진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렇게 이분화된 집단은 내집단과 그렇지 않은 외집단 간에 이질감과 적대감을 보이며 갈등을 더욱 가속화 한다.

이런 갈등의 심화에 미디어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아만다 리플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최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엘로우저널리즘과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의 일부 몰지각한 개인 미디어가 사회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이들은 갈등이 유발한 대중의 분노를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근의 국내 정치와 세계 정세에서 나타나는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식의 집단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한 집단이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것임을 상기하며,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가 동등한 사람임을 인정해야 한다.

얼마 전, 한 논문에서 공존을 위해 덩굴을 느슨하게 감아올려 둘 다 고사 되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칡과 등나무에 대한 식물학자의 관찰이 보고된 바 있다. 이렇듯 식물조차도 공생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마당에,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한 인간은 갈등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갈(葛), 등(藤)의 예에서 보았듯 공생(共生)하지 않으면 그 끝은 공멸(共滅)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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