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령천 한 줄기를 옆에 끼고 걷는 싱그러운 숲길
광령천 한 줄기를 옆에 끼고 걷는 싱그러운 숲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2.0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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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한라산둘레길 1구간 천아숲길(2)
벼랑에 오르고 나면 비교적 평평한 산길
냇가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작은 돌탑들
귀중한 약재로 활용되는 빨간 덩굴용담열매
커다란 소나무 아래 무성히 자란 제주조릿대
냇가쪽 단풍
냇가쪽 단풍

■ 광령천을 따라서

천아계곡에서 벼랑을 오르고 나면 그때부터 비교적 평평한 산길을 걷게 된다. 오른편에 광령천 한 줄기를 끼고 가는 싱그러운 숲길이다. 지도에서 물길을 따라 가보면 살핀오름 옆에서 시작하여 붉은오름 곁을 지나 작은 하천을 수없이 합치며 흘러온 존재다. 그렇게 험난한 높이를 거친 물이라 계곡을 깊숙하게 파 놓아 이곳에서는 냇바닥을 볼 수 없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원천(源泉) 지역에서부터 흘러온 나무 종자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에는 제주를 상징하는 꽃인 참꽃나무가 있고 간혹 마가목이 슬며시 끼어 있을 때도 있다. 마가목이야 그 씨앗을 새가 옮긴다고 해도 참꽃나무 씨앗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냇물이 옮겼다고 봐도 좋겠다.

단풍나무는 씨에 날개가 달린 시과(翅果)여서 늦가을바람을 타고 날아다니지만 결국 떨어져 냇물을 따라 흐르다 적당한 때에 상륙하는지, 이맘때쯤 멀리서 숲을 살피면 냇가 주변을 따라 빨간 물감을 풀어놓는다. 제주에 자생하는 단풍은 그냥 단풍과 당단풍 두 종류다. 그 중 잎이 비교적 작고 5~7개로 갈라진 것은 단풍, 넉넉한 크기로 9~11개로 갈라진 것이 당단풍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것들이 제대로 물들지 않아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새로쌓기 시작한 돌탑
새로쌓기 시작한 돌탑

■ 조그만 ‘소망의 탑’들을 보며

여유 있게 걸으며 주변 풍경을 즐기다 보면, 500m 조금 넘어 지점에서 내를 건너게 된다. 늘 물이 흐른다면 ‘냇물’이라 했겠지만, 건천(乾川)인 제주의 숲길에선 그냥 ‘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내’가 생긴 다음, 어느 오름 분화구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면 낮은 곳 ‘내’를 찾아 흐르고, 멈추는 순간 여러 가지 형태로 굳는다. 여기에 다시 큰 내가 흐르면서 굳은 바위를 깨뜨리기도 하고, 깨어진 바위를 더러 굴리기도 하여 몽돌과 자갈, 모래를 낳아 놓는 것이다.

제주의 높은 지대의 경우 산세가 고르지 않은 탓에 크고 작은 내가 많고 결국 큰 줄기에 이어지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은 하천도 많다. 하천은 있는 그대로가 길인 경우가 많기에 비가 많이 올 때는 넘어 다니지 않은 게 상책이다. 이제 이쪽 냇가에도 작은 돌탑이 하나둘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걱정 없는 사람들의 눈에야 소꿉놀이처럼 보이겠지만, 그 속에 간절하고 소중한 소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소망의 탑’인 걸 알기나 할까.

덩굴용담열매
덩굴용담열매

■ ‘여의주(如意珠)’를 찾아서

단풍도 그리 많지 않지, 게다가 산딸나무 열매인 ‘틀’이나 보리수나무 열매인 ‘볼레’ 따 먹을 시기도 지나 있어, 졸참나무 도토리나 바라보며 걷다가 문득 ‘덩굴용담’이 생각났다. 지금 걷는 길은 임도(林道)로 저 멀리 평화로변의 원동을 거쳐 산록도로를 지난 다음 바리메 옆을 스쳐온 길이다. 그리고 동쪽으로 계속 이어져 이곳 냇가에서 멈춘다. 그래서 노로오름이나 붉은오름을 다닐 때, 차를 대어놓던 곳이 임도삼거리다. 이곳은 산록도로 천아오름 신엄목장 입구에서 산세미오름 옆으로 올라와 지금의 제주한라대학교 말산업 실습목장과 천아오름 옆을 지나 바로 이어지는 곳이다.

전에 임도삼거리에 차를 세우고 오갈 때 묘하게 생긴 꽃을 보았고, 늦가을에 실로 보석 같은 열매를 보며 여럿이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후 길을 정비하면서 열매 무더기는 사라졌지만 그 주위를 뒤져 열매를 가끔 발견한다. 아름다운 가을 열매 중에 흑진주 같은 누리장나무 열매나 구슬 덩어리 남오미자도 있지만 이 덩굴용담만 하랴.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덩굴용담은 용담과에 속하는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80㎝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담(龍膽)이란 이름은 ‘용의 쓸개’란 뜻이므로, 저런 열매는 여의주에 해당되리라. 그 이름처럼 한약의 귀중한 약재가 되어 열을 내리게 하고, 기침을 멈추게 하며, 허파와 지라(肺臟)을 튼튼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고 나와 있다. 그 꽃말이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라니….

조릿대 가득한 길
조릿대 가득한 길

■ 제주조릿대 가득한 길

임도삼거리에서부터는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비교적 곧게 뚫려 있는 길을 따라 노로오름 쪽으로 걷는다. 양쪽 숲에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늘어섰다. 그런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거리가 있어 그런지 소나무에 덩굴식물들이 많이 올라가 있다. 제일 많은 것이 담쟁이고 그 다음이 송악, 그리고 줄사철, 바위수국, 등수국 같은 것들이다. 나무 아래엔 조릿대가 유난히도 무성하게 자랐다.

조릿대는 본토의 것과 조금 달라 ‘제주조릿대’라는 이름을 가졌다. 제주조릿대는 가장자리에 흰 줄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고, 줄기에 털이 없고 녹색이며, 마디 주변이 자주색을 띤다. 과거 제주 섬에 가뭄이 자주 들었는데, 그때 이게 종족 보존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사람들이 따다 먹는 구황식물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지구 온난화로 한라산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다 보니, 이렇게 무성하단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삼나무길.
삼나무길.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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