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서술의 양대산맥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서술의 양대산맥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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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민족문화 1984)
삼국유사(민족문화 1984 順庵手澤本 影印本) 표지.
삼국유사(민족문화 1984 順庵手澤本 影印本) 표지.

학창시절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사료(史料)를 선배들과 강독하자면 늘 직면하는 문제가 어떤 판본(板本)을 읽을 것 인가였다.

배운 대로 가장 좋은 선본(善本)을 택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찾는 이가 적은 극히 제한적인 시장을 위해 그런 자료를 출판하다보면 판매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량이 많은 자료는 원본 사이즈대로 영인(影印)하지도 못 해서 축쇄(縮刷)라도 하게 되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상황을 맞이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차선책으로 구하기 쉬운 대중적인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보다 저렴한 책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그 자료를 가지고 논문이라도 쓰는 경우에야 무리(?)를 해서라도 보다 나은 자료를 택하겠지만 그냥 모여서 공부할 때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역사서 가운데 삼대(三大)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는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은 서양사나 동양사가 아닌 우리 역사에 관심 있는 사학도(史學徒)라면 부분적으로라도 한 번씩 읽어보는 대표적인 강독 교재였다.

그 중에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관찬(官撰) 사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삼국유사(順庵手澤本 影印本) 단군신화 부분.
삼국유사(順庵手澤本 影印本) 단군신화 부분.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고려 충렬왕대에 편찬한 이 책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도 없으시겠지만 같은 시기를 다룬 정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불교 관련 사료나 신화·설화 등이 많이 포함되어 강독하기엔 내용상으로도 난해한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게다가 고려 간본(刊本)이나 조선 초기에 출판된 완질(完帙)본이 전하지 않아 글자 교감에 대한 관점이 다양했던 데다 강독 당시 주머니 사정상 신활자로 새로 조판(組版)한 육당 최남선의 증보본(增補本)(민중서관 1954)을 다시 찍은 책(서문문화사 1983)을 이용했던 까닭에 더욱 읽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롭다.

일국의 국사를 지냈다지만 한 승려가 편찬했기에 누군가에게는 일개 야사(野史)로 심지어는 잡사(雜史)로까지 취급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었던 이 사찬(私撰) 사서는 또 다른 잣대로 우리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했던 그 정사에서는 도저히 품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 고대사의 다채로운 면면을 두루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사료를 수록하고 있어 지금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외려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그 정사에서는 외면 받았던 고조선의 건국 신화를 수록해 우리 역사의 시작을 알 수 있게 했다거나 한글이 없었던 시기의 우리 노래를 향찰로 표기한 14수(首)의 신라 향가(鄕歌)를 기록해 놓아 우리 고대문학 연구의 단초(端初)를 제공했던 점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주목하는 바이기도 하다.

엊그제 우연히 만난 실물 크기의 ‘삼국유사’(민족문화 1984 順庵手澤本 影印本)를 뒤적이다 보니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DB(db.history.go.kr)에서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 번역문에 글자 교감(校勘)까지 아무 때나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좋은 시절을 사는 이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제비가 듬뿍 든 라면 한 그릇이 400원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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