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같은 진남지 못을 품은 월랑지오롬
초승달 같은 진남지 못을 품은 월랑지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30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9. 월랑지오롬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5 번지에 있는 월랑지오롬은 금백조로에서 개여기(백야기)오롬을 지나고 동쪽으로 200~300m를 더 가다 보면 좌보미 오롬이 잘린 것처럼 보이는 데 그 왼쪽(左側)에 보이는 조그맣고 아담한 오롬이 보이는데 이곳이 월랑지오롬이다. 여기서 다시 200m를 못 가서 성산읍 공설묘지가 있는 궁대오롬에 이른다.

궁대오롬 자락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목초지로 사용되는 좁지 않은 벌판이 보인다. 이미 베어버린 목초지에 새로 자라난 목초들, 키 작은 잡초들이나 누렇게 물들어 멀리서 보면 무슨 곡식이 저리 누렇게 익었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곡식도 목초도 아니고 목초가 이미 베인 자리가 누렇게 물들었고 드문드문 억새들 사이로 말들이 뛰논다.

월랑지오롬 앞에는 차를 세울 만한 곳이 없다. 궁대오롬 쪽에서 차를 돌려서 월랑지 빈터에 차를 세우고 월랑지 벌판으로 들어선다. 좌측으로는 좌보미 봉우리 동쪽 등성이가 잘린 듯 보인다. 금백조로 우측에 보이는 월랑지는 작고 아담하여 오롬이라 부르기에 부끄러운 작은 오롬으로 현재 등재된 368개 오롬에 속하나 알오롬 가이 작은 오롬이다.

월랑지는 사방이 둘러싸인 작은 오롬인데 오롬 동쪽은 궁대오롬 초원으로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동거미오롬까지 곶자왈로 이어졌다. 서쪽으로는 개여기(백약이) 입구에 좁은 농토도 보인다. 그리고 금백조로가 있는 개여기 앞까지는 제주시 관내이고 개여기 동쪽은 서귀포시 관할이다. 월랑지는 이렇게 동서남북이 트였으나 산맥은 금백조로 길로 차단된 독립된 오롬이다.

이 오롬이 오롬이라 부리기엔 부끄러워 보이는 것은 작은 것 뿐 아니라 비가와야 ‘이름 값을 제대로 한다.’ 이 오롬을 ‘월랑지’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 오롬 동남쪽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데 그 휘어진-굼부리에 비가 오면 ‘진남못’을 품어서 달빛에 찰랑이는 ‘월랑지(月浪池)’가 된다. 그러기에 비가 없으면 ‘월랑지(月朗地) 땅’이요, 비가 오면 ‘월랑지(月浪池(못))’인 셈이다.

비가 오고 ‘진남못’에 물이 고이면 오롬은 마치 ‘물 위에 뜬 초승달’ 같아 보인다. 즉, 월랑지 자체에 못이 있는 게 아니고 ‘진남못’에 물이 월랑지 오롬과 별개로 있어서 ‘월랑지’라고 부르기엔 다소 어폐가 있어 보인다.

제주도 오롬 대부분이 화산재인 분석구로 이루어져서 항상 물을 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곳이 항상 물을 품고 초생달 같은 오롬이 그 물 위에 떠 오른다면 대단한 관광지가 돼었을 것이고 이렇게 초라하게 숨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오롬도 동백공원처럼 지정되어 관광지로 개발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월랑지는 초라하고 쓸쓸하다.

바로 이웃의 개여기(백약이)오롬은 그런대로 이름이 있어서 신혼부부들이 웨딩 촬영지로 이름나 있다. 그리고 동거미오롬은 제법 크고 알려진 곳이나, 월랑지오롬은 주측으로 탐방하기에는 너무 작은 곳이라서 ‘월랑지는 꿈꾼다.’ 어느 날 이곳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날이 있을지 모른다.

이 오롬은 비록 작지만 오롬을 탐방하는 사람들에게는 개여기(백약이)에서-월랑지를 거쳐-좌보미(오롬)으로 트래킹을 하는 중에 거쳐 갈 만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월랑지를 올라보니 ‘태그(리본)들이 꽤 많이 걸린 것으로 보아 여러 오롬동우회들이 거쳐 간 자국들이 보인다.

표선면 성읍리는 제주 동쪽에서는 오롬 부자 마을이라서 이 오롬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성산읍에는 오롬 숫자도 많지 않으니 지금 같으면(지경으로 보면) 궁대오롬과 함께 ’금백조로 길 건너편이니 성산읍으로 주소지를 바꾸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월랑지 오롬은 사시절 푸른 모습이다. 그것은 1960년 이후에 제주도의 많은 오롬들이 산림녹화가 시행되면서 이 오롬도 마찬가지로 산림녹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롬에는 소나무·편백나무도 조금 보이나 대부분은 삼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주위에는 고사리와 억새들로 채워져 동절기(가을에서 봄까지)가 아니면 근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월랑지의 식물은 개여기(백약이)나 좌보미와 비슷하다. 동쪽 진남못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은 이미 목초가 베어져 허허롭다. 북쪽 동거미오롬까지는 곳자왈로 칡넝쿨·소교목들이 얽혀있다. 근처 오롬에서 보니 월랑지는 곳자왈 속에 볼록 솟은 알오롬같이 귀엽다. 지난여름, 곶자왈에 작은 자귀나무 꽃이 비바리 눈썹처럼 가련하더니 겨울로 가는 월랑지는 지금도 쓸쓸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