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4·3 해결 천착한 사회학자…“제주인 생명력 위대”
반평생 4·3 해결 천착한 사회학자…“제주인 생명력 위대”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3.11.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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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주&제주인] 13. 허상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제주인의 DNA는 특별하다. 육지와 고립된 섬이자 변방이라는 약점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극복하면서 그 삶의 궤적을 DNA에 새겼다. 그리고 DNA에서 발현된 제주인 특유의 정신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근본(根本)’이다. 공생을 위한 수눌음,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는 지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등은 제주인의 결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전환의 시대에 제주인의 정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미래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무한 동력’인 제주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본지는 올해에도 제주인 발굴 프로젝트 ‘2023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지난 24일 제주썬호텔에서 만난 허상수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이 4·3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인은 ‘바람’을 극복하며 살았다. 제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돌담에는 돌 틈으로 바람을 내보내며 저항을 최소화한 제주인의 지혜와 강인한 생명력이 담겼다. 

특유의 지혜와 강인한 생명력으로 숱한 바람을 극복해 온 제주인이지만, 7년 동안이나 제주에 불어닥친 ‘4·3’이라는 광풍(狂風)은 참혹한 역사로 제주인의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여기, 참혹한 역사를 제주인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치유하기 위해 반평생을 바친 사회학자가 있다. 허상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을 지난 24일 제주썬호텔에서 만났다.

▲ 경찰 들이닥칠까 두려웠지만…4·3 알려야 했다

허상수 위원은 제주시 일도동 출신으로 광양국교와 제주제일중, 제주농고(제주고)와 제주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전국연합노동조합 중앙특허법률지부 지부장을 시작으로 사회 운동에 뛰어든 그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중앙국제특허법률사무소에서 노조를 결성한 혐의(국가보위법 위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위법을 위헌으로 결정하자 재심을 청구해 노조 결성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고 건조물 침입과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해선 선고가 유예됐다.

정권의 탄압에도 그는 사회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제주지역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4·3 문제 해결 필요성에 눈을 떴고, 1987년 시위 과정에서 벽돌을 맞은 제주지역 대학생의 농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제주사회문제협의회’를 결성하며 4·3 활동을 본격화했다. 

1988년, 4·3 4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 세미나가 활동의 시작이었다.

허 위원은 “제가 4·3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가 40주년 세미나를 처음으로 준비할 때였다. 백지상태에서 제가 발표자를 모두 섭외하고 사회를 보게 됐는데, 혹여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그런 두려움에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두려움 속에서 세미나를 연 허 위원에게 힘이 된 것은 대중의 호응이었다. 금기시됐던 4·3을 다루는 세미나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면서 허 위원은 자신감을 얻게 됐고, 1996년 4·3특별법 초안 작성에 나서면서 4·3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

허 위원은 이후 2000년 국무총리 소속 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 전문위원, 2003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2004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특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전쟁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4·3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썼다.

허 위원은 현재는 제주4·3연구소 이사와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아울러 지난 13일 4·3 유족 당사자로선 처음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위원으로 임명돼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4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추천으로 선출된 지 7개월 만이다. 

허 위원은 “그동안에는 변호사나 학자, 단체 대표들이 진화위에서 활동했는데 국가 폭력 피해 유족이 위원에 선임된 것은 제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제주썬호텔에서 만난 허상수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이 제주인의 DNA에 새겨진 강점을 설명하고 있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 제주인 ‘원팀’ 정신-생명력 빛나…4·3재단 논란 대화로 해결해야

허 위원은 반평생 4·3문제 해결에 헌신하며 제주인의 ‘원팀’ 정신과 생명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허 위원은 “4·3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중요할 때 제주 사람들끼리 잘 단합을 해서 ‘원팀’을 이룬다는 것”이라며 “세계 곳곳, 전국 곳곳에서 제주 사람들이 능력을 열심히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허 위원은 이어 “4·3유족들이 일본까지 건너가면서 발휘한 생명력, 인내심은 제주 사람들만의 특장점”이라며 “최근에 4·3평화재단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지속해서 양쪽이 대화해서 잘 풀어 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허 위원은 앞으로 4·3 문제 해결을 위해 유족을 위한 복지 기금 조성, 미군정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허 위원은 “보상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피해 배상”이라며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배상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배상금의 100분의 1, 1000분의 1이라도 모아서 유족 복지와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잘 안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가 당시 미군정의 책임”이라며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공동 조사나, 미국 국회의 결의안 발의 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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