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카니발 품은 '날것'에 전국 들썩..."목표는 세계 제패"
사우스카니발 품은 '날것'에 전국 들썩..."목표는 세계 제패"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3.11.28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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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주&제주인 12. 사우스카니발 리더 강경환
강경환 사우스카니발 대표

웃음 절로 나는 흥겨운 음악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제주산(産) 혁신적인 밴드 사우스카니발이 창단 15주년을 맞았다.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로컬 색깔이 깃든 음악을 고수하며 전국구 팬층을 확보한 밴드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하다.

‘도르라 조들지마랑 도르라 몬딱 도르라(달리자 걱정하지 말고 달리자 함께 달리자)’하고 노래하며 마음 속 비빌 언덕이 돼준 몬딱 도르라(2013년)부터 ‘나준거 놔동갑써 빽이영 금반지영(내가 줬던건 놓고가요, 빽이랑 금반지랑)’하며 매달리는 일부 ‘찌질한’ 제주 남자 이야기를 담은 ‘가지맙써(2021년)’.

인스타그램 릴스 조회수만 해도 발매 2주만에 100만뷰를 넘긴 제주어 더블 싱글 신곡 ‘이어도사나(2023년)’까지.

이들의 창작곡은 50여 개에 이른다.

본지는 사우스카니발의 강경환 대표(43)를 만났다.

■ 춤추고 음악하는 사회복지사

서귀포 출신인 강 대표의 첫 출발은 댄스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2세 때부터 비보잉과 힙합 댄스를 췄고, 고교시절 또래들로 구성된 댄스 팀 ‘맥스(MAX)’를 창단, 대표를 맡아 각종 도내 대회에서 대상을 석권, 지역 언론에서 ‘도내에서 검증된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제주에서는 유일하게 머리를 땅에 짚고 도는 헤드 스핀부터 다리를 풍차처럼 돌리는 윈드밀 등의 기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팀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마임, 제주도립무용단 비상임 단원 활동 등을 해온 강 대표는 삶의 쉼표를 찍고자 훌쩍 런던으로 떠나 음악에 눈 떴다.

스물 다섯 나이에 제주로 돌아온 그는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본교 총학생회장, 도내 총학생회장들 간 구성한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역아동센터에 취업하지만 보름 안에 그만두고 2008년 서귀포에 사설 소극장이 하나도 없던 시절 전 재산 1900만원을 몽땅 털어 단란주점을 인수해 소극장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만들었다.

“방황하는 청소년이 나쁜 길로 안빠지게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만의 복지를 해보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여기서 모인 음악인 멤버들이 사우스카니발의 시초가 된다. 베이스 주자 고수진씨와 퍼커셔니스트 고경현씨가 사우스카니발의 시작 멤버이자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 첫 프로젝트는 서귀포시청소년 지원센터를 찾아가 매달 한 명씩 청소년을 선정하게 하고, 성인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에 공연 이후 수익금으로 선정 청소년에게 에어조던 신발 등 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에어조던 오십키로 사주기 캠페인이었다.

여기에 강 대표는 교육을 더해 청소년들에게 기타, 베이스, 드럼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4년 간 등록 회원 수는 500명에 달했다.

‘가출 청소년 다 잡아준다’는 소문에 학부모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1318 보호기관으로 인증되기까지 했다.

이들의 소극장 활동은 향후 동홍동주민센터가 만들어질 때 동홍아트센터가 지어지는 계기가 됐다.

■ 슬픔과 기쁨 공존 스카에 더해진 제주색

“스카음악은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다는 게 엄청난 매력이었죠. 아름답지만 역사적 아픔이 있는 제주와도 정서가 맞았어요. 나고 자라 자연스레 생긴 정체성은 절대 흉내낼 수 없지만 이들도 따라할 수 없는 제주만의 정체성이 있죠. 이를 끄집어내고자 했습니다. 장르라는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어요. 관악기가 포함된 밴드로서 지금보다 실력을 더 키워 세계적 밴드가 돼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우스카니발 인생 2막은 서귀포 소극장 문을 닫고 2013년 제주시 노형동으로 연습실을 옮기면서부터다. 사실상 ‘문을 걸어 잠그고’ 2년 간 오직 음악에만 집중, 실력을 갈고 닦았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매주 3일 모여 합주 연습을 하는 등 강행군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습했어요. 스카 본고장 자메이카도 영국인들이 해방 이후 철수하고 남은 찌그러진 악기를 주워 갖고 와서 한 거예요. 그래서 화음이 예쁘기보다는 날 것의 소리가 오히려 매력있죠.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우리가 구현하면 오히려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했죠.”

사우스카니발은 디지털 사운드가 난무하는 가운데 날 것의 소리 재현을 추구하고자 했고, 제주 정체성을 담고자 했다. 해녀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 물질 작업을 도우며 이들 공동체와 마음을 이해해 ‘좀녀이야기(2014년)’,‘까파치기(2020년)’등의 창작곡을 내는 가 하면, 심방(제주 무속인)을 찾아가 연물 연주하는 법을 직접 배워 ‘위시스(2020년)’에 녹여내는 등 생활권에 깊숙이 들어가 최대한 고증을 거쳐 음악을 만든다.

또 해녀항일운동 당시 불렸지만 묻혀 있던 해녀의 노래(2018년)를 발굴하기도 했다.

이외 일상 생활 속 제주인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곡들을 쏟아냈다.

소소한 행복에 살짝 미소 지을 수 있는 곡들이다.

“좀녀라는 가사 중 친구였던 해녀가 바다 속에 들어가 죽는 이야기가 나와요. 다음 날 슬퍼하지 않죠. 티 내면 다 무너지니까 쉬쉬하는 거예요. 숨 참고, 물안경 안에서만 우는 겁니다.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니야, 괜찮아하고 격려하는 모습들은 외부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생활권 안으로 들어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이들은 2013년 EBS 헬로루키에 선정됐고, 국내 최대 규모 락 축제인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3년 연속 메인 공연 팀으로 섰다. 두 가지 모두 도내 최초 유일이다.

이들 꿈은 음악을 통한 세계 패다.

"쿠바에 갔을 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아냐는 자부심 담긴 표정이 잊을 수 없어요. 제주 사람들이 해외에서 친구가 올 때 사우스카니발이 있다고 소개해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이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제주 사람들이랑 계속해서 관계를 가져나갈 것이기 때문이예요. 경로당 스타 밴드에서 해외 투어를 하다 객사하고 싶습니다"

7인조 스카 밴드 사우스카니발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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