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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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이 맵다. 싸아악~. 낙엽이 구르는 소리도 서늘하다. 전농로에 나뒹그는 낙엽들이 다 바스라지면 거리는 곧 겨울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재작년에 “직장은 세월 기우는 소리와 거리가 멀다”며 사업장을 다 정리하고 남은 일생을 제주에서 살겠다고 온 선배가 하소연했다.

“1년 중 3분의 2는 세찬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내리는 것 같아요.”

제주는 바람의 섬이다. 이런 바람 저런 바람소리를 다 들어야 살 수 있는 섬이다.

요즘엔 이런 바람 소리도 있다.

거리에 붙은 여야 정치인들의 플래카드가 바람에 찢어지며 아아악~.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는 데 아무도 쳐다보질 않으니, 더욱 악을 쓰는 것 같다.

매운 바람을 타고 있다.

▲내년 4·10 총선은 5개월도 남지 않았다.

‘선거는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과는 불가분의 관계다. 바람을 잘 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회자된다. 선거의 승패 요인으로 인물과 정책 등을 꼽지만, 그것도 바람이 없으면 만사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사실 바람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더러 음습한 바람이 선거판에 끼어드는 게 문제다. 선거판을 흔든 바람 가운데 유명한 것이 ‘북풍(北風)’이다. 선거 때 북한의 돌발행위나 북한과 관련된 큰 정책, 곧 ‘북한 변수’를 일컫는 것이다. 종종 돌풍이 되기도 했다. 지난 21대 총선거에서도 북풍이 불었다. 투표 하루 전 북한은 순항 미사일을 여러 발 쏘아댔고 전투기도 띄웠다. 하지만 북풍은 20세기를 끝으로 영향력이 다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북풍은 무시 못 할 선거 변수였다. 그때마다 ‘기획설’, ‘음모론’이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2000년 4월, 16대 총선 사흘 전 당시 김대중 정부는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으나 야당(한나라당)에 졌다.

2010년 3월,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으나 결과는 야당(민주당)의 승리였다. 2016년에도 20대 총선 닷새 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탈북’ 발표가 있었지만 야당(더불어민주당)이 1석 차로 이겼다.

북풍만이 아니다. 그동안 바람은 많았다. 병역비리 ‘병풍(兵風)’. 국세청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뜯어냈다는 이른바 ‘세풍(稅風)’. 또 최근에는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권에선 각자의 입맛에 맞게 과거의 ‘바람’을 소환하는 이른바 ‘검풍(檢風)’도 있었다.

▲내년 총선은 바람이 어떨까.

벌써부터 호사가들은 예상되는 바람의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의약풍(醫藥風), 구설풍(口舌風)에서부터 명월풍(明月風)에다 여사풍(女史風)도 있다.

그런 추잡한 막장 정치 바람엔 ‘마이동풍(馬耳東風)’이 좋다.

우리가 희망하는 건 지역사회의 ‘새 바람’이다.

제주에 훌륭한 인재들이 나타나 지역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중요한 정치행위인데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주저 앉은 일은 아니다.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은 데,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결연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된다.

그러면 바람개비가 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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