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감밭에 둘러싸인 동서 두 개의 원추형 걸세오롬
밀감밭에 둘러싸인 동서 두 개의 원추형 걸세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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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걸세오롬
걸세오롬 남쪽에서 본 한라산
걸세오롬 남쪽에서 본 한라산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산124번지에 소재한 걸세오롬은 예촌망오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예촌망오롬에서 남서쪽으로 바라보면 한라산 앞으로 올망졸망 몰려 있는 여러 개의 오롬들 중에 자세히 찾아야 걸세오롬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걸세오롬 전망대에서 바다 쪽으로 바라보면 망오롬 뿐이라서 자세히 안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하례리에는 두 개의 오롬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예촌망오롬이고, 또 하나는 걸세오롬이다. 걸세오롬은 동·서 두 개의 오롬으로 나뉘는데, 이중 동걸세는 큰걸세, 서걸세는 족은걸세라고도 한다. 이 둘은 모두 원추형 오롬이다. 동걸세는 해발 158m, 비고 48m, 서걸세는 해발 150m, 비고 50m, 두 개로 나누는 것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망오룸은 비고 63m로 걸세오롬보다 해발 차이로 보면 110m에서 솟아 있기에 더 높아 보인다.

1914년 일제시기, 행정구역이 통폐합될 때 하례리(알예촌을)은 4개 동네가 있었다. 오지동은 가마귀루 일대로 망오롬이 있는 곳이고, 굴앗동네(寺田洞)는 4·3사건 때 폐동 되었다. 또한, 직서동(直舍洞)이 있었고, 걸서동(傑瑞洞)은 걸서오롬 주변에 있는 동네로 일찍부터 오롬 주위에 동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게 ‘걸세오롬’ 동네이다.

걸세오롬의 ‘걸세’의 뜻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한국어 사전에서 걸쇠는 대문이나 방의 여닫이문을 잠그기 위하여 빗장으로 쓰이는 ‘ㄱ’자 모양의 쇠, 또는 총알을 쏘거나 막을 때 쓰는 장치, 또는 주전자나 냄비 따위를 화로 위에 올려놓을 때 걸치는 기구를 말한다. 중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걸쇠는 중국어 발음으로 ‘suǒ(鎖)’라 하는데 이는 자물쇠나 자물쇠 모양의 물건, 또는, 쇠사슬·족쇄 등을 말하기도 한다.

이를 제주도에서는 거울쇄(巨乙鎖)라는 한자를 빌어서 발음하였다. 한어사전에서 ‘클거巨는 (부피가)크다·(수량이)많다·거칠다·조악하다·조잡하다’는 뜻이다. ‘을(乙)은 새 을자로 새·제비(제빗과의 새), 둘째라는 뜻’이며, ‘쇄(鎖)는 쇠사슬 쇄 자로 쇠사슬·자물쇠·항쇄(項鎖·죄인의 형틀)·수갑’ 등을 말한다.

갈쇠오롬에서 본 동걸세오롬
갈쇠오롬에서 본 동걸세오롬

거울쇄(巨乙鎖)의 한자는 지금 중국에서는 사용치 않는 말이다. 이는 한국에서 음차(音借)하여 쓰인 경우이다. 어쩌면 육지부(한반도)에서도 옛날에는 그렇게 쓰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이 말은 ‘거울쇄→거울쇠, 차츰 줄여져 걸쇠→걸세’로 변형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제주 오롬들도 이런 식으로 변형되어서 아직도 그 유래나 어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것이 지금 제주 오롬의 어원이나 유래를 찾아야 하는 과제이다.

동(東)걸세오롬은 ‘효례천탐방로길’로 그 구간은 현재 ‘걸서악생태탐방길’이란 이름으로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걸세오롬 비탈길을 올라가면 그 끝에는 크지 않은 빈터가 있고 정면에는 아담한 전망대가 보인다. 북서편으로는 예촌망오롬이 보이고 그 너머 바다 쪽으로는 제주 동녘 바다가 반짝거린다. 동쪽으로는 서(西)걸세오롬이 보이지만 서남편으로는 숲에 가려서 한라산도 또 다른 오롬들도 보이지는 않으나 포근해 보인다.

전망대 서쪽 밭에는 황칠나무 묘목들이 보인다. 선흘동백동산 같은 곳에는 자연산들도 많으나 황칠묘목들이 판매되는 곳은 서귀포·남원 일대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묘목은 푸른 칡넝쿨에 감싸이듯 폭 덮였다. 남쪽으로는 효례천으로 나가는 ‘걸서악생태탐방길’이 잘 정리된 것 같다. 그러나 황근을 심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황칠나무를 심었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

공터 남쪽으로는 작지 않은 무덤이 보여서 살펴보니 ‘유향별감권공(留鄕別監權公)과 부인군위오씨(婦人君威吳氏)’의 합장묘이다. 이미 만추가 지났는데 숲에 가려서인지, 바람을 타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무덤에는 구절초와 당잔대가 피어나 꽃동산 같다. 공터 끝에는 큰 구실잣밤나무가 정자나무처럼 서 있고 주위에는 평상과 벤치들이 자리 잡았다.

숲으로 들어가 보니 커다란 곰솔나무와 밤나무 몇 그루, 그리고 알밤을 까고 난 밤송이 껍데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이 외로 참식·후박·생달·종가시·사스레피나무 등의 상록수들과 천선과·예덕·작살·굴피나무 등의 낙엽수, 그 아래로는 천냥금 몇 그루와 자줏빛 꽃향유·노란빛 좀씀바귀가 겨울로 가는 걸세오롬에 귀엽게 피어서 하례리는 정겹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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