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나들이
초원 나들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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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성산읍 수산평에 섰다. 억새 만발한 들녘은 은빛 파도가 너울거린다. 사시사철 말을 놓아 먹일 수 있는 이곳은 북방유목민에게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지 싶다. 넓게 펼쳐진 초원과 온화한 기후는 방목지로 최적지였으니 어찌 욕심이 나지 않으리. 

삼별초 진압 후 원제국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어 직할령으로 삼았다. 저들은 ‘아막’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말을 방목하기 시작했다. 원나라 황실의 힘이 이곳 제주에 닿은 지 백여 년이 지난 후 반원 정책을 펼친 공민왕은 제주를 고려영토로 환원시켰다. 세상에 영원한 일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 하듯 왕조가 바뀌었다. 

조선 정부는 말 매매를 금지하는 마정(馬政)을 펼쳤다. 마장을 정비하여 국마장으로 만들고 말 관리를 체계화했다. 말의 중요성이 감지되는 부분이다. 말은 이동 수단이었기에 나름 신분을 상징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말은 나면 제주로’라는 말이 속담으로 고착되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둘레가 소나무로 우거진 낭끼 오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름들은 억새 흰 물결 위로 고개를 쳐든 형국이다. 기황후의 명으로 조감대(鳥瞰臺)를 설치하여 말을 감시했다는 대왕봉도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못이 크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수산 한못’이 발아래 소나무 가지 사이로 파름히 내려다보인다. 초원에 만들어진 인공 오아시스다. 모든 생물에 물은 필수이니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만들었던 목자들의 흔적이다.

오름에서 내려와 수산 한못에 섰다. 못을 파는데 노역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지역의 원주민이 동원됐을까, 아니면 주둔하고 있던 원나라 군사들이 다루가치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까. 풀은 좋은데 물이 없으니 난감한 일이었겠지. 빗물은 암반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으니 목마름을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었으리. 물에 비친 하늘을 보며 머나먼 과거가 오늘에 이르렀음을 실감한다. 

‘천고마비’라는 말이 머릿속을 회오리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오랑캐를 경계하라는 의미가 생략된 채 전해지는 성어다. 하지만 당시 원제국의 정벌계획을 상기한다면 전개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제주의 목초를 먹고 말이 강해졌으니 ‘일본을 정벌하라!’ 원나라의 압박에 고려조정은 군사 연합에 꼼짝없이 따라야 할 형편이 아니었던가. ‘수산 한못’에서 지나간 역사의 한 장면을 더듬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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