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제주 역사의 귀환,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잡지
잊힌 제주 역사의 귀환,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잡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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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창간호(1981)
월간지 ‘마당’ 창간호(1981) 표지.
월간지 ‘마당’ 창간호(1981) 표지.

얼마 전 우당도서관이 주관하는 ‘2023 제주독서대전’에 조천읍도서관과 함께 제주 관련 서적과 자료를 전시하는 ‘제주책(冊)관’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작은 부스였지만 역사와 문학, 예술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한 자료 대부분은 누구나 보면 우리 제주와 관련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싶은 전시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우리 전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대충 보신 분들은 그냥 지나치셨지만 눈썰미가 있는 몇몇 분들은 그게 뭔지 궁금해 하셨다. 이에 나란히 전시된 관련 자료들과 함께 연결시켜 설명해 드리면 ‘아~’ 하는 표정들이셨다.

그 자료들은 몇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잡지 창간호 수집벽이 있는 내가 그 책들을 처음 입수할 때는 몰랐던 거지만 나중에 살펴보니 이번 전시와는 인연이 있는 놈들이라 출품했던 것들이었다. 얼떨결에 수집한 자료지만 뜻밖의 소중한 의미가 더해졌다고나 할까. 오늘은 그 책들 가운데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월간지 ‘마당’ 창간호다. 1981년 9월에 창간된 이 잡지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마당'이란 제호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활공간’이자 ‘우리 고유문화의 창조적 공간’을 뜻한다고 밝히고, ‘이 땅의 사회 문화 현상을 살피고 그 뒤에 숨은 뿌리를 캐내 밝히며 알리고 토론하는 광장의 구실을 한껏 다해 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한 ‘어두우면 불을 밝혀 들고’, ‘우리의 참모습을 조망하기도 할 것’이며 ‘힘든 먼 길을 스스로 떠날 각오’도 되어 있고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눈을 떠서 상식을 존중하고 시대의 흐름을 아는 우리 시대의 열려진 정신을 지키고자’한다고 창간의 변을 밝히고 있다.

‘마당’ 창간호(1981)에 실린 현기영 작가의 ‘변방에 우짖는 새야’ 부분.
‘마당’ 창간호(1981)에 실린 현기영 작가의 ‘변방에 우짖는 새야’ 부분.

우리나라 잡지사의 전설 ‘뿌리깊은 나무’(한국브리태니커)와 같은 순 한글 전용에 가로쓰기 편집을 했던 이 잡지는 창간사에서 스스로 밝혔던 포부에 부합하고자 다양한 기획과 통렬한 사회 비평 등으로 독자들의 환영을 받아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끝내 재정난으로 1986년 10월호까지 통권 62호를 발행하고 휴간하게 된다.

이런 잡지가 이번 전시에 등판한 까닭은 제주와 아주 밀접한 작품과 그 시작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제주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대 민란(民亂)인 방성칠(房星七, 1898년)과 이재수(李在守, 1901년)의 난을 다룬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야’가 연재된 잡지이자 그 첫 회가 실린 창간호이고 이 연재소설은 후에 ‘끝부분을 개작하여 분량을 늘리고’, ‘몇 군데 수정 가필’해서 1983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한 것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변방에 우짖는 새’이기에 소설로 시작해서 연극으로 나중에는 영화화되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두 민란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데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잡지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서울로 압송되어 근대적인 재판을 받았다는 이재수 등의 평리원(平理院, 근대 고등재판소) 판결선고서를 접하고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들의 죄목에 대한 판결의 근거가 대명률(大明律)이라니. 명색이 20세기 초의 근대적 재판인데 언제적 대명률인가. 

하긴 예나 지금이나 구태의연(舊態依然)한 건 여전한 게 그 장르이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변방에 우짖는 새(창작과비평사 1983) 표지.
변방에 우짖는 새(창작과비평사 1983) 표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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