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새겨진 약속: 계약서의 힘
글로 새겨진 약속: 계약서의 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1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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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연 제주한라대 관광경영과 교수·논설위원

미국에서의 직장생활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입사한 곳이 국제회의 기획사(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였다. 내 일머리의 초석이 되어준 경험이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아무 경험도 없는 나에게 팀장으로써 어떻게 그렇게 큰 행사를 맡겼는지 아직도 의문스럽다.

그 당시 기조연설이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였고, 만찬에 고건 시장과 환경부 장관의 참석으로 행사가 마무리 지어지는 환경 관련 국제행사였다. 입사하자마자 주최 단체의 실무위원이신 부회장님께 인사하러 가는 당일 날, 내가 맡은 이 직책은 내가 맡기 전에 여러 명이 그만 둔 자리이고 부회장님이 그 이유로 화가 많이 나 있다는 사실을 사장님께서 알려주셨다. 인사를 드렸더니 부회장님이 눈길 한 번 주시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 “또 그만둘껀데 왜 인사를 하나?” 하셨다. 난 겁도 없이 “제가 이 행사 제 손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나온 이후 정말 1년 뒤 내 손으로 행사를 마무리 짓는 야외만찬이 있는 날, 워커힐 제이드 가든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일이 터졌다.

그 당시 야외만찬의 공연자는 주최자 회장님이 원하시는 째즈연주자를 섭외를 했고 관련 계약서를 연주자 매니저와 수정하며 공연이 끝나면 바로 현금지불을 하겠다는 조항으로 계약서를 완료했다. 그런데 만찬이 한창 무르익고 연주자가 공연무대로 올라가야 하는데 갑자기 매니저가 날 찾아와서 공연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현금을 지금 달라는 것이였다. 매니저에게서 술냄새가 났고 보아하니 공연자는 공연을 안하겠다며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난 바로 부사수에게 계약서 팩스로 보내라고 하고, 사장님과 부회장님께 보고를 했다. 부회장님은 그 매니저에게 경찰을 부르고 고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결국 째즈공연자는 공연을 한 뒤 현금을 받았고, 알아보니 매니저가 공연자에게 공연전에 주겠다고 이야기를 한 상태였고 둘 사이 불신의 불똥이 이 행사에 미친 것이다. 결국 만찬이 끝날 즈음 부회장님으로부터 이 행사를 잘 마무리 지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내가 말로 한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글로 쓴 계약서가 이 행사를 마무리 잘 짓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제주한라대는 세종대 대학원과의 양해각서, 우즈베키스탄 세 곳의 대학교와의 MOU 등 올 가을 참으로 많은 협약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육하기 위하여 세계 85개국 248개가 개설되어 있다. 얼마전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세종학당의 개원식을 참석하기 위하여 안디잔 국립외국어대학교를 방문하였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관심이 높아 호의와 환대를 넘어 지역 방송국에서 내내 따라 다닐 정도였다. 우즈베키스탄은 1924년 소련에 병합됐다가 1991년에 독립을 선언한 이후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여 이슬람교의 영향이 크다. 국가적으로 사립학교 허용이 얼마 되지 않아 2019년에 개원한 코칸대와 곧 개원할 탸슈켄트 국제대와 협약들이 출장 중에 이루어졌다. 러시아와 아시아 그리고 이슬람교 문화가 녹아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출장 중에 했던 인상깊은 경험들은 내 수업의 앉아있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에게 보내는 관심과 이해가 확연히 달라졌다.

무대 뒤 주최자와 운영자들의 피가 마르는 노고의 최대수혜자는 공연을 즐기는 참가자들이다. 공연준비를 위한 많은 약속들과 준비의 수혜자가 따로 있듯, 두 기관과의 약속과 노고로 양국과 양교의 학생들이 누릴 가능성과 기회의 장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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