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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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세상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를 추구한다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처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혼란스러웠던 경우는 없었다. 외부에서는 역사상 가장 낮은 출산율 때문에 일어나는 인구 감소로 인해 민족의 소멸과 국가의 멸망이 가장 빨리 실현될 나라라 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의식 역시 그러한 방향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달리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노력 대비 결과가 비례하여 따라오지 못한다는 절망감, 가족이나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젊은이들을 그렇게 몰아간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은 각자의 몫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회 깊숙이 파고든 극단적 편향성과 팬덤이 중심을 이루는 지금의 시대는 지지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상식, 규범, 법 등에 맞지 않더라도 동조하며, 그에 대응하는 행동 또한 매우 적극적이다. 극단적 편향성은 팬덤을 형성하여 세력을 과시하는데, 그것이 정치로까지 확대되면서 파급력이 강해졌고,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 보다는 오직 팬덤에 의한 가짜 영웅, 유명인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우선하는 일방적 이기주의는 세상을 움직이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 법치, 공정, 평등, 배려 같은 것은 안중에 없고, 나, 내 자식, 내 편만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아이를 낳으면 나만 손해라 생각하고, 학교에서는 내 아이만이 특별해야 하며, 내가 있던 직장을 내 자식이 세습하게 하여 다른 젊은이들의 직장을 훔치는 불공정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범법행위를 하고도 내가 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나 정치인 등의 사상과 행동이 일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릇된 행위라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바이러스처럼 사회 전체를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세계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아예 입 밖에 꺼내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의 실종, 무례와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일상화, 공경과 배려의 망각 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은 가정과 학교에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그 일을 하지 않아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한테만 사랑받는 자식이 아니라 사회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가정이 해야 할 일이고, 좀 더 절도있게 가르쳐서 개인과 사회에 필요한 일원으로 키워내는 것은 학교가 해야 할 사명이지만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자체를 슬프게 만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현재만을 느끼고 누리면서 즐기면 된다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집은 없어도 좋은 차는 있어야 하고, 빚을 지더라도 명품을 구매와 해외여행은 하며, 가정과 가족보다는 나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마저 국가가 책임지라는 그 뻔뻔함이 우리를 한층 슬프게 한다. 참으로 슬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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