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11일) 오전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숲길을 걸어내려오는 길. 문인들의 수화전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다가 멈춰선 것은 사진 두 장을 붙인 작은 작품 앞이다.
사진 하나는 늙은 아버지와 딸이 함께 웃고 있고, 또 하나는 늙은 아버지가 혼자 활짝 웃고있다. 그 가운데 김순희라는 문인이 쓴 ‘면도하는 날’이란 제목의 글이 붙었다.
아버지 얼굴에 깎다 놓친 수염과 상처…. 막둥이 딸이 “다음부턴 내가 면도해줄까?”한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은 아버지 ‘면도하는 날’이 됐다.
“와 이 멋진 신사분은 누굴까?”
“막둥이 덕분에 기분 조오타! 말끔한 얼굴로 환하게 웃은 아버지…”
그 다음 맺는 말은 가슴이 먹먹하다. “그 곳에서는 누가 면도를 해드릴까?” “매주 화요일 빈 하늘만 올려다본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필자의 아버지는 해방 직후 오현중학교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는데 말년에 담배를 많이 피워 늘 어머니와 다투었다.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양손에 담배 두 가치를 동시에 불붙여 피운다며 “세상 이런 일이 있느냐”고 했다. 물론 아버지는 부인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는 담배 두 가치를 양손으로 피우는 걸 보고 조용히 여러 사람들을 불러 그 장면을 보여주었다. 확실하게 증인을 만든 것이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피우던 담배 꽁초를 버리기전에 새 가치에 불을 붙였고, 그 상태로 한동안 있었다. 어머니 말처럼 양손에 불 붙인 담배를 낀 것이다.
아버지는 심한 ‘체인 스모커’였다. 그러면서도 필자에게는 “담배를 꼭 끊으라”고 늘 목소리를 높였다.
▲1980년대 포크송 가수 서유석이 부른 ‘고향 꿈’의 한 대목.
“우리 아버지 무덤가에 핀 담배 꽃, 그 꽃 한 줌 꺾어다가 말아 피웠소. 또 한 줌 꺾으려다 눈물이 났소. 너울너울 담배 연기 간 곳이 없네.”
그렇게 아버지의 담배 연기는 아슬한 추억이 됐고, 나는 아버지 타계후 십년도 더 지나서 담배를 끊었다. 이제 금연 8년차다.
그런데 언제였을까.
아버지가 나보다 모든 면에서 약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슬픈’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한 존재가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성(城)’에서 ‘왜소함’으로 내려앉았는지. 삶은 그래서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일 게다.
아버지가 그립다. 세상에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 있으랴. 간혹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는 그냥 웃어 보이신다. 그 자상한 눈빛으로.
▲자연휴양림 잔디광장을 돌아서니 한편에서 “까르르~”.
젊은 부부들과 함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소나무 길 지나 쭉쭉 뻗은 삼나무들 위로 날아갔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겠지.
가을 바람이 삼나무 숲에서 불어왔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은 ‘나무는 평온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의미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나이들면 아픈 데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노인 건강은 하루가 다르다. 자식 보고픈 마음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그걸 안다.
“등이라도 한번 밀어드릴 걸…”
올 가을은 하늘이 더 깊어졌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