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사랑에 빠진 디자이너… 제주 고유 매력 그리기 앞장
‘물’과 사랑에 빠진 디자이너… 제주 고유 매력 그리기 앞장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3.11.08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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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주&제주인] 11.김대헌씨

제주인의 DNA는 특별하다. 육지와 고립된 섬이자 변방이라는 약점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극복하면서 그 삶의 궤적을 DNA에 새겼다. 그리고 DNA에서 발현된 제주인 특유의 정신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근본(根本)’이다. 공생을 위한 수눌음,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는 지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등은 제주인의 결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전환의 시대에 제주인의 정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미래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무한 동력’인 제주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본지는 올해에도 제주인 발굴 프로젝트 ‘2023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제주인에게 물은 그들의 삶이자 생명수였다. 

제주인은 생명수를 확보하고자 수십 리에 달하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한 바가지, 한 방울의 물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그런 제주인의 삶에는 귀중한 것을 아껴 쓰고, 나눠 쓰던 ‘조냥정신’이 깃들어 있다. 

제주 이주 10년차, 물과 사랑에 빠져 제주인의 DNA 속에 새겨진 조냥정신을 그려내는 김대헌씨(65)를 지난 7일 만났다. 

# ‘재능기부’ 통해 제주 매력 그리는 디자이너

김대헌씨는 제주연구원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개소 3주년을 맞아 할리스 제주연북로DI점 컬처 스페이스 H에서 오는 16일까지 진행되는 ‘제주물 유산 2023 잇-수다(水多)’ 전시를 맡았다. 

그는 박원배 제주지하수연구센터장과의 인연으로 재능기부 형식으로 전시에 참여하며 제주 물 캐릭터와 이모티콘, 스티로폼 박스로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의 ‘소왕물’ 용천수를 재현한 모형 작품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다. 

김씨는 “저는 물에 미친 사람이다. 용천수는 보통 해안가에 있는데 중산간에 있는 게 신기해 모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활용된 제주 물 캐릭터와 제주지하수연구센터의 CI 등 각종 콘텐츠 또한 그의 손길을 거쳤다.

김씨와 물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서울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허약한 체질을 극복하고자 조정을 시작했고, 대학 시절까지 조정 국가대표를 지냈다. 

동료들과 함께 대학에 진학하며 ‘미대’를 선택한 그는 ‘뱃놈이 웬 미대냐’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 ‘신라면’, ‘2% 부족할 때’ 등 유명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이너가 됐다.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2014년 12월, 제주에 정착하며 또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신혼여행을 제주로 오기도 했었고, 감귤 관련 컨설팅을 하면서 제주에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제주에 있으면서 ‘내가 서울에서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제주 이주 배경을 설명했다.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 잡은 그는 제주 6차 산업 브랜드 디자인, 서귀포시 마을별 디자인 및 컨설팅 재능기부에 나서면서 숨겨진 제주의 매력을 끄집어내는 데 노력했다.

지금은 서귀포시 호근동에 머물며 생태관광마을 호근동을 가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방을 통해 소상공인을 위한 디자인 교육, 리사이클링 활용 교육도 준비하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제주 이주 후 제 컨설팅이 먹히지 않거나 수용자들이 변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다. 다시 서울로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제주 바다를 보니 내가 어디를 가냐고 생각하게 됐다”며 “메이드 인 제주, 제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제주인 정신은 근면성실·조냥정신…사라져가는 제주 안타까워”

제주 이주 10년차를 맞은 김씨는 제주인의 정신을 묻는 말에 두 가지 단어를 꺼냈다. ‘근면성실’과 ‘조냥정신’이다. 

김씨는 “저는 한량 백수로 제주에 내려왔는데, 호근동 어르신들의 근면성실함과 조냥정신에 감동했다. 조금만 들어가면 그것을 볼 수 있다”며 “우리 집에도 마을 주민분들께서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놓고 가 주신다. 고마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저 흰머리는 뭔데 자꾸 돌아다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제주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이해하려 했다. 외방에 대한 텃세는 어디에나 있지만, 진심으로 다가가니 마음이 풀렸다”며 “지금은 제가 부모님처럼 모시는 분도 계시고, 호형호제하는 이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주 물에 대한 경쟁력을 지키지 못하면 제주는 사실 없다. 제주 지하수의 고마움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용천수가 600개에서 300개로 줄어들어도 그 누구 하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불감증에 걸린 것이다. 제주의 환경을 아끼고, 제주만의 고유한 매력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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