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이율배반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6.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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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싹(苗)을 뽑아서(拔) 성장(長)을 도와준다(助)는 뜻이다.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것으로 그 시작은 이렇다.

옛날 중국 송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논에 심어 놓은 벼가 빨리 자라지 않자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아무리 지켜봐도 모가 생각만큼 자랄 기미가 없게 되자 결국 자신이 직접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논으로 달려가 모를 하나하나 뽑아 크기를 높게 했다.

그 결과 금 새 커진 자신의 논에 모들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이를 집안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깜짝 놀란 식구들은 쏜살같이 논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모가 말라죽고 난 뒤였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으며 순리를 거슬러 억지로 처리하면 일을 망친다는 ‘발묘조장’이라는 사자성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최근 간부회의에서 공무원들의 보고 행태를 꼬집었다.

원 지사는 “행정이 문제점이나 불편한 내용에 대해서는 축소하고, 가급적이면 (윗사람의)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쪽, 그리고 문제가 없는 쪽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이러면 그 때는 넘어가기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진실성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고 강조했다.

 

#“불편한 진실까지 취합해야”

“대화 행정을 할 때는 빠짐없이 상대방의 얘기를, 불편한 진실까지 다 취합해야 한다.”

“진실을 알고 있어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진실에 대해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고 나중에 일을 하려면 이중삼중으로 하게 돼 낭비가 훨씬 크게 된다.”

원 지사는 작심한 듯 자신의 의중을 털어놨다.

지난 도정 이후 제주도가 이어 오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빚어지고 있는 ‘뒷북 수습’을 보면서 도정 최고 책임자로서 많은 고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게 예래휴양단지 문제다.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몇몇 토지주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주 역사상 최대 규모인 외자 유치 사업으로 포장되면서 토지주의 주장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런데 사법부는 이와 관련,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으로 최종 판정했다.

제주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와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한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 문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강정해군기지 문제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2010년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세계적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중문관광단지 주상절리대 일대를 휘감는 대규모 호텔건립을 승인한 것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중문 주상절리대 일대를 대기업 호텔 정원으로 사용하는 길을 터 준 셈이다.

시민단체 등 양심세력의 반발이 빗발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투자유치 당시 약속했던 부분들이 도지사와 여건이 바뀌면서 약속을 저버리거나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다.”

“앞으로 많은 외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행정의 연속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외국 투자법인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불안하게 생각한다. 투자는 빈 땅에 나무를 심은 것으로, 나무를 심을 때 정책하고, 심고 나서 정책이 바뀌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일 제주도가 개최한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터져 나온 참석자들의 불평이다.

원 지사가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까지 꺼내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당일 역시 제주도청 회의실에서 나온 말이다.

이 간담회에는 제주도 정무부지사도 참석했다.

과거 도정에서 사업 인허가 절차를 밟았던 외국인 투자기업의 입장에서 이 같은 불평과 불만은 당연하다.

제주도가 ‘투자 유치 실적’이라는 수치상의 목표에 눈이 멀어 자초한 결과다.

자라지도 않은 논에 심어진 모를 억지로 키우려다 되레 화만 키운 셈이다.

원 지사의 발언이나 투자 기업들의 주장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빚어진 근본적 문제들을 이들 모두는 외면하고 있다.

이들 모두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업자들을 불러다 제주도에 개발위주의 정책을 겁박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배경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은 없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제주도의 본심이 알쏭달쏭하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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