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사는 법
부자로 사는 법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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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숙 세화중학교 교감·수필가

얼마 전 불교동호회에서 여행을 다녀왔다. 연배 있는 분들이어서 따라갈 때마다 많은 걸 배우고 온다. 겹겹이 쌓이는 정은 덤이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함께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며 법우들에게 복권을 선물하겠다는 게다. 단체로 복권을 받아보는 건 나로선 처음이다. 복권은 어쩌다 꿈자리가 좋을 때 한두 번 사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복권 당첨 이상의 행운을 누려온 걸까. 열세 사람 모두가 ‘꽝’이다. 만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는데 함께 여행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면 된 게 아닌가. 목젖 빠지게 웃을 수 있으니 복은 그만하면 된 게 아니냐며 덕담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재산이 화제가 됐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누구나 부자로 살고 싶기는 할 터. 30여 년 직장생활 덕으로 애들을 키우며, 먹고사는 데 큰 지장 없으면 된 것 아닌가. 재산이 많지 않아도 고만고만한 직장에 다니는 것을 자산이라 여기며 살았다. 농담 삼아 말끝에 부자 되는 법을 알려드리겠고 했더니 다들 나를 주시한다.

“내가 부자다, 라고 생각하면 남부럽지 않은 큰 부자가 된답니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이미 부자가 돼 있었다. 마음 하나 고쳐먹으니 없던 배짱까지 생긴 걸까.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따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고는 여우가 ‘저건 신 포도야.’라며 발길 돌렸다지. 포기 내지는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순간엔 집착하지 않을 자유의지도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할 찰나조차 없이 바삐 산다며, 생각하는 건 사치라고 흔히들 말한다. 찰나의 힘은 때론 엄청나다. 오랜 기간 길들인 삶에 깊은 균열을 내기도 한다. 운이 좋아 찰나의 생각을 법우들과 함께 나누다 보니 잃었던 자신감도 되살아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건 무엇일까.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의 체계, 곧 신념 아니겠는가. 누구랄 것도 없이 곧은 신념을 가지고 제 할 일을 다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가족끼리 화목하고, 주변을 아우르는 삶, 그게 부자로 사는 또 하나의 방법 아닌가.

무엇이든 좋다. 반백 년 세상살이에 나름의 이력이 붙은 만큼 오늘의 깨침을 밀어붙이리라.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니 늘 허기진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다들 속 편한 것은 아니니, 크게 부족하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부자로 살아볼 일이다.

국밥 한 그릇 든든히 먹고, 목청 돋우는 만큼 제 역할을 다하며,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다, 라고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이 돼보련다. 살아온 세월을 밑천 삼아 뱃심까지 두둑이 챙긴다면, 큰 탈 없이 생의 마지막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웃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람, 누군가의 이익을 가로채지 않는 사람, 주변 사람을 웃게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최고다. 간밤에 기막히게 좋은 꿈이라도 꿀 때면 더도 덜도 말고, 오천 원짜리 복권 한 장을 포켓 깊숙이 밀어 넣기도 하면서. 이야말로 오늘을 부자로 사는 상수(上手) 아니겠는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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