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현 차귀진에서 1956년 한경면이 된 차귀오롬
대정현 차귀진에서 1956년 한경면이 된 차귀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1.0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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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차귀오롬

차귀오롬(당산봉)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산 28번지(4705번지)에 있는데 한경면에서는 제일 높은 오롬이다. 해발은 148m, 비고는 118m로 계산적으로는 30m 높이에서 분화했지만 그것은 최고봉에서 끝 지점(세 곳 정도)의 평균치이고 실제로 북쪽 자락은 바다에 접하고 있는 해안 오롬이다. 또한 면적은 4.674㎡로 사라봉보다 두 배 정도가 넓다.

차귀오롬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오롬으로 용수리 해안 근처의 화산체가 물을 만나 폭발한 마그마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이다. 또한 오롬의 생태는 굴오롬(산방산)·용머리 해안·시흥리(성산읍) 멀미오롬·사계리(안덕면) 바굼지오롬과 비슷한 환경의 오롬이다. 그러나 ‘당산봉(당오롬)은 여러 곳에 많기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차귀오롬이라 부르는 게 좋겠다.

차귀오롬이 소재한 용수리·고산리는 고려 때는 대정현 차귀진이었다. 차귀진의 차(遮)는 ‘막다·가로지르다’, 귀(歸)는 ‘돌아갈 귀(歸)’로 귀향을 의미한다. 전설에는 중국의 호종단이 ‘제주에서 큰 인물이 나오면 중국에 해가 되므로 제주 각지의 지맥을 끊은 후 귀국하려고 배를 탔는데 강풍을 만나 죽게 되므로 귀국(歸國)이 차단(遮斷)되었다’고 전해온다.

용수리·고산리를 제외한 한경면의 다른 지역은 1914년, 제주목 우면(右面)에서 신우면(애월읍)·구우면(한림읍)으로 나뉜다. 1935년 구우면이 한림면으로 개칭되며 한림면에 속하는데, 1956년 한림읍과 한경면이 분리될 때, 대정현 차귀진의 두 마을(용수·고산)도 한경면이 된다.

차귀오롬이 당산봉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오롬 아래 ‘뱀을 제사하던 차귀당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당산봉이라 불리게 된 것은 차귀당이 있던 오롬(山)에서 유래된 말이다. 여기서 ‘봉’이란 산봉우리 ‘봉(峰)’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봉화(烽火)가 설치되면서 당(遮歸堂)산(山,오롬)봉(烽火臺)라고 불려진 것이다.

차귀오롬에는 ‘봉화대 표지석’이 있지만 조선시기 봉화대가 있던 자리는 아니다. 현재 제1 전망대는 아래쪽, 제2 전망대는 정상에 있다. 필자의 견해는 봉화는 제2 전망대가 세워진 오롬 정상이어야 느지리오롬과 모슬개오롬이 보인다. 봉화는 적의 침투를 알리고 그 상황을 급히 근처에 알려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재의 자리가 아니다.

차귀오롬은 제주도 3성 9진의 여러 개 봉화대 중에 그 경관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차귀진에는 한 곳의 봉화대와 두 곳의 연대가 있다. 당산 봉화는 동쪽의 만조(느지리오름)봉화와 서쪽의 모슬(摹瑟) 봉화대 간에 교신하던 곳이다. 또한, 우두(牛頭)연대는 서림(西林)-두모(頭毛), 서림연대는 무수(茂首)-서림 간에 교신하던 곳들인데, 현재 쓰이는 지명은 ‘두모리’뿐이다.

차귀오롬에 오르면 왜 제주도 봉화대 중에 제1 경관인지 알게 될 것이다. 차귀오롬은 차귀도와 자구내 아름다운 포구, 서쪽으로는 숲이 우거진 평야(뜰)가 연이어 있고 멀리 모슬개오롬과 굴오롬(산방산)도 보인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신창리 해안의 풍차도 멋지다.

이 지역은 오래전 신석기시대 유물인 지석묘와 샤머니즘의 차귀당과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차귀오롬 자락은 용수리 바다와 접해 있는데 동쪽으로는 한경면, 남쪽으로는 서귀포시 대정읍과 접하는 중산간 지경으로 안덕면과 한라산으로 이어진다. 차귀오롬 북서 자락 끝에는 물리오롬(수월봉)이 있고, 차귀오롬 아래쪽 해안은 자구내 포구와 차귀도 앞바다이다.

차귀오롬은 한라산에서 완만하게 해안을 향하여 펼쳐진 끝부분이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그리고 그 끝은 평야이고, 오른쪽으로는 용수리 해안이고 또한, 동쪽으로는 한림읍과 경계를 이루고 서북쪽으로는 중산간 마을들과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서귀포시·대정읍·안덕면과 경계를 이룬다.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중산간은 쉬(牛馬)를 키우던 들판 너머(한경면 위)로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까지 평화로(대로大路)로 이어진다.

차귀오롬이 차귀악이라 불리게 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탐라지’·‘조선 강역총도’ 등에서다. 또한, 당산봉(堂山烽)이라 불린 것은 제주도에 봉화대가 설치되던 조선 때부터로 ‘탐라순력도’·‘탐라지도병서’·‘제주삼읍도총지도’·‘제주삼읍전도’·‘해동지도’ 등에도 나타난다.

그 옛날 영주(제주) 10경에 두 번째를 ‘사봉낙조’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영주십경’을 말한다면, 당연히 ‘차귀낙조’라고 하지 않을까? 필자는 황혼이 지고 먼 하늘에 붉은 놀이 사라질 때까지 아름다운 차귀오롬 자락, 자구내 포구를 떠나지 못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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