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없는 들불축제’, 이러려고 원탁회의 했나
‘불 없는 들불축제’, 이러려고 원탁회의 했나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3.11.01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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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없는 들불축제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기후 위기 시대 들불축제의 대전환 필요성에서 출발한 논의가 격랑에 휘말렸다.

지난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당시 원탁회의여론조사 결과 왜곡부터 행정시장 월권 및 책임 소재, 지속 가능성 여부, 공감대 형성 미흡, 예산 사용 등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이러다간 들불축제 논의가 성화요원(星火燎原‧작은 불이 들을 태운다) 형국으로 흐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엄청난 재난이 된다는 말이다.

미상불, 숙의형 원탁회의부터 복기해 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

원탁회의 패널 187명 중 18~29세가 2(1.1%)이고 60대 이상은 96(51.3%)이었다. 제주시 인구 중 18~29세는 16.5%(67650), 60대 이상은 28.4%(116298)인데도 말이다. 인구 비중에 따르면 18~29세는 31, 60대 이상은 53명이 원탁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패널 연령대 구성에서 대표성이 상실되면서 원탁회의는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한권 의원(더불어민주당, 일도1이도1건입동)“18~29세는 과소대표, 60대 이상은 과대대표라며 근본이 잘못되면서 공론화와 개선 방향 등 전체가 신뢰를 잃었다며 검증을 요구했다.

원탁회의에 이은 권고안 발표와 제주시의 최종 방향 결정도 깔끔하지 못했다.

원탁회의 운영위원회는 지난 919일 원탁회의가 열린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들불축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들불축제를 유지는 하되 기후 위기 시대 탄소 배출과 산불, 생명체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는, 두루뭉술하고 알쏭달쏭한 권고였다.

보름 뒤인 1011일 제주시는 권고안을 반영해 생태적 가치에 부합하고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들불축제를 만들겠다며 콘텐츠 개발을 위해 내년 축제는 열지 않고 2025년 새로운 들불축제 첫선을 보이겠다고 발표했다. 결정적으로 오름 불 놓기 폐지가 논란에 불을 댕겼다.

고태민 의원(국민의힘애월읍갑)원탁회의 도민여론조사 결과 들불축제 유지 56.7%, 폐지 31.6%였고 원탁회의 패널도 유지 50.8%, 폐지 41.2%였다. 오름 불 놓기 폐지는 원탁회의 결과에 대한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결정이라며 들불축제는 도지사의 고유사무다. 행정시장의 결정은 도지사의 들불축제 존폐 여부 지시문서에 대한 항명이자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불이 들불축제의 알파와 오메가인 만큼 앙꼬 없는 찐빵이란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정책 결정 과정도 개운치 않은 대목이 많다.

강병삼 시장이 최종 결정은 했다지만 오영훈 지사의 발언을 보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구심이 합리적이다. 올해 들불축제가 열린 직후 오 지사는 오름 불 놓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데 이어 지난 4월 도의회 도정질의에서 불씨도 안 된다고 공식 표명했다.

그러더니 오 지사는 제주시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 엿새 전인 지난 105일 제주도 출입기자단과 가진 차담회에서 오름 불 놓기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재차, 단호하게 밝혔다.

새로운 들불축제 기획과 관련한 제주시 내부 혼선도 도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지점이다. 지난달 25일 담당 부서가 들불축제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용역 추진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강 시장은 당혹감이란 표현을 쓰며 용역이 아닌 자체 기획을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닷새 뒤 제주도청발() ‘용역 의존 탈피보도가 나왔다. 공공정책연수원이 113일까지 정책 기본계획 수립 전문 과정을 운영하는데 용역에 의존하지 말고 공직자 스스로 정책 기본계획을 세워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오 지사의 당부가 반영됐다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쿵~ 하면 짝~ 아닌가. 이른바 답정너말이다. 원탁회의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어록을 빌리자면 이러려고 원탁회의 했나 자괴감이 들지경이다.

그나저나 새로운 들불축제는 어떤 콘텐츠일까. 제주시가 조만간 기획 플랫폼 구성에 나선다니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불로써 불을 구한다란 뜻의 이화구화(以火救火)만은 피해야 한다. 들불축제 폐해를 구한다는 게 오히려 폐해를 조장하거나 역효과를 불러와선 결코 안 된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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