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 여신에게
디케 여신에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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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요즘 들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유명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읽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제목도 잊었다.

생각나는 대목만 소개하자면 엄혹했던 시절 절에서 사법고시를 공부하던 고시생이 어쩌다 큰 사건에 연루된 친구 때문에 감방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지엄하신 감방장 밑에 자칭 교육부장이라는 자가 때때로 신참 죄수에게 자기들이 정한 법을 교육시킨답시고 폼을 잡는다.

교육부장이 하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힘없는 누군가가 법을 어겨 감옥에 간다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른 바 ‘6 조지기’다. 형사는 패어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고.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 패어 조지는 형사나 세어 조지는 간수가 어디 있을까마는 그 당시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오늘날처럼 인권이 중요하게 부각되던 시절이 아니고 김영란법도 없던 때니까. 죄수야 사식을 먹어가며 요샛말로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하면 된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겠나. 오라 가라 부르기만 하고 판결은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본인도 그러려니와 가족의 입장에서도 영치금을 넣어야 하고 편의를 봐달라고 간수에게 뒷돈도 줘야 하고 변호사도 사야 하니 집구석은 거덜 나는 게 당연하다. 피 말리는 감옥생활과 법정 싸움을 이보다 더 간명하고 리얼하게 드러낸 표현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와 더불어 생각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디케 여신’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는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공정하게 판결하고 법을 집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디케의 동상은 눈을 가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양손에 법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칼과 공정함을 상징하는 천칭을 들고 있다.

이런 여신도 폭증하는 인간들의 악행 앞에 속수무책이었던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 들고 있던 천칭을 걸어놓고 별이 되어버렸다는데 그게 처녀자리와 천칭자리라 한다. 

각설하고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오늘날도 디케 여신의 후예들은 여전히 미루어 조지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권력의 주변에 있거나 권력을 가진 정치인의 재판 또한 계속 미루며 관계된 자들의 임기를 보장해주거나 임기 말쯤 되어야 선고를 하는 식으로 누릴 것 다 누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재판은 지나치게 신속하게 처리함으로 편향적이고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범죄 혐의자들이 국회에 앉아 떵떵거리거나 도리어 장관을 호통치는 광경을 보면 소설 속 고시생 앞에서 폼을 잡던 교육부장이 떠올라서 헛웃음이 나온다. 무너진 법치는 누가 세우나. 

요즘 보아하니 검사는 증거를 넘치게 찾았다는데 판사는 기각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키는 모양새다. 방탄도, 지연도 지겹다. 기각이 무죄는 아니지만 정치인이 법을 무시하며 정치탄압이라 우기는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싶다. 정의를 가장한 불의의 거짓을 통쾌하게 벗기고 악을 응징해줄 정의의 여신은 정말로 별자리가 되었을까? 

대한민국 법원 앞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여. 그대는 졸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제발 두 눈을 가려주오. 그럴 리 없겠지만 당신의 눈이 또 사람을 가려가면서 볼까 두렵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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