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솔·저수지·마을·한라산까지 탁 트인 경관에 감탄
곰솔·저수지·마을·한라산까지 탁 트인 경관에 감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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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2)
오름가름이라는 아담한 마을터전이었던 저수지
푸름 잃지 않고 방문객 맞아주는 천연기념물 곰솔
수산봉 오름길 소나무에 매어놓은 하늘 그네 눈길
역사와 문화, 경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밭담길
천연기념물 수산곰솔.
천연기념물 수산곰솔.

■ 5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사업

공사 때문에 제방길로 가지 못하고 수산북길을 따라 저수지 둘레를 돌며 옛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저수지 한 복판은 예부터 내려오던 아담한 마을 터전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면 댐을 건설한 곳 중 일부에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곳도 그 중 하나이다.

원래 ‘오름가름’이라는 알동네 72세대 42가구가 저수지를 개발하면서 강제이주 당했다. 2021년에 발간된 ‘물메’ 향토지를 보면, 1956년 12월 20일자로 농림부는 귀엄저수지 건설 허가를 내준다. 이 마을과 관계없이 아래쪽에 있는 하귀와 구엄리의 밭을 논으로 바꾸어 쌀농사를 짓게 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렇게 강제 이주시키며 토지를 수용해 만든 논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고 쌀값이 폭락하면서 사라져 버리고, 저수지는 유원지로 활용하려다 그것도 실패하여 그때 지은 음식점 건물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한 제주도내 몇 곳의 저수지도 마찬가지로 용처를 잃고 표류 중이다.

마을이 수몰된 저수지.
마을이 수몰된 저수지.

■ 마을 포제단과 수산리 곰솔

이어 나타나는 오름 자락에 수산리 포제단, 아담하게 자리 잡은 건물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마을제를 춘추제(春秋祭)로 연 2회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 말에 이르러 모진 압박과 저지로 주민생활의 어려워지고 바빠지면서 연 1회 춘제(春祭)만 행하고 있다 한다. 제는 석전대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유교식 마을제로 마을수호신과 풍농신 2위를 모시는데, 토지지신위(土地之神位)와 포신지위(酺神之位)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를 봉행한다.

저수지를 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푸름을 잃지 않고 방문객을 맞아주는 소나무, 바로 천연기념물 제441호 제주 수산리 곰솔이다. 곰솔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로 해송(海松) 또는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수산리 곰솔은 저수지 쪽 가지가 밑동보다 2m 정도 낮게 물가에 드리워져 있고, 수관이 넓게 퍼져 있는 등 그 모양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라고 믿고 보호해 왔다.

하늘 그네.
하늘 그네.

■ 새로 생긴 명소 ‘하늘 그네’

곰솔을 지나면 오른쪽에 수산봉 오름 산책로 입구가 있다. 올레 제16코스이기도 한 오름길을 50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트인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소나무에 매어놓은 그네 하나가 나타난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어쩌다 이곳에 이런 걸 메어놓았지 모르지만, 그 반응은 엄청나다.

탁 트인 시야 너머로 곰솔과 저수지, 마을과 한라산까지…. 누구도 반할만한 경관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산봉 그네’라고 쳐서 찾으면 바로 ‘강추’가 나타난다. 한 네티즌(달콤지지맘)은 ‘하늘로 슝 날아가는 느낌을 받는 수산봉 그네, 애월 근처 가실 때 슬쩍 들러 보시길 추천해요.’라고 할 정도다.

수산리 포제단.
수산리 포제단.

■ 당동과 서목당

밭담길은 당동 정류소가 있는 곳으로 돌게 되어 있다. 정류소 옆 팽나무가 있는 정자를 의지하여 밭담길 안내 표지판이 섰다. 아무래도 ‘당동’이란 이름 자체가 신당(神堂)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감귤을 따는 옆 밭 아저씨에게 물어 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마을지에 언급된 신당은 수산리 주민들끼리 ‘할망당’ 또는 ‘서목당’이라고 불렀고, ‘서목당’은 버스정류장 남쪽 ‘당팟’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 사람들의 생산, 물고, 호적을 관장하던 당신(堂神)을 모셨는데, 제일은 매 칠일(七日)과 해일(亥日)이었다. 입춘 이후는 개인적으로 걱정거리가 있거나 정성드릴 일이 생기면 따로 택일하여 다녔다.

마을 밭담길.
마을 밭담길.

■ 아기자기한 밭담들

당동 정자를 지나 동쪽 수산1교 다리가 있는 곳까지는 울담이나 밭담이 독특하고 일부는 걷어버린 곳도 있다. 수운교당을 바라보며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길옆에 허벅에 물을 부리는 석상이 있다. 그곳은 ‘큰섬지’라 하여 큰 샘이 있었는데 길을 넓히면서 흔적만 남겼다. 여기저기 세워놓은 시비(詩碑)에 대해서는 ‘올레 이야기’에서 소개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비탈길을 막 오른 곳, 할머님 한 분이 밭 옆에 밀고 다니는 유모차를 세워 놓고 마늘을 심고 계셨다. 너무 열심이어서 말을 붙이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넘어서니 오른쪽 밭담은 좀 높고 왼쪽은 낮다. 길은 어느덧 물메초등학교 입구를 지나 이사무소 출발점에 이른다.

돌아오는 길에 지금까지 걸었던 여덟 마을의 밭담길을 떠올려 본다. 어느 마을이던 그 길을 통해 마을의 자랑거리를 범주 안에 넣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기야 밭담만 보며 걸다 보면 얼마 안 가 싫증날 수도 있을 터. 그 길을 만든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관까지 함께 들여다보라는 깊은 뜻이 숨겨 있으리라. <끝>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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