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 지령 100호 발간의 의미
‘다층’ 지령 100호 발간의 의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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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100번의 계절이 피고 졌다. 25년의 세월 동안 문학만을 보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1999년 IMF 외환 위기를 무릅쓰고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30대였던 필자는 60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생의 절반을 제주지역에서 문예지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왔다.

단 한 호의 결호(缺號)도 없었으니, 지난 세월 기우뚱거리지 않고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제주지역에서 기관지를 제외하고 어떤 잡지도 100호를 이어온 적이 없으니, 가히 제주 문학의 새로운 역사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시간을 거슬러 창간 당시로 간다. 과연 제주에서 문예지를 창간하고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했다. 취약한 도세(道勢)를 바탕으로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문예지를 낼 수가 있기는 할까. 이러한 불안은 창간하고 나서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한 호를 낼 때마다 경제적 어려움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돈을 쌓아놓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날마다 막막한 심정으로 다음 계절을 맞았다. 

외부적인 비아냥은 오히려 고마웠다. 제호(題號)를 ‘다층’이라 했더니, 몇 층이냐는 둥, 연립이냐 아파트냐는 둥, 몇 호까지 내고 문 닫을 거냐는 둥, 제주에 연고를 두고 내는 문예지니, 제주지역 문인들에게 지면의 절반을 할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힐난조 말들은 오히려 존재감의 확인이나 관심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의 문학 분위기는 어땠는가. 수도권 중심의 문학을 이른 바 중앙 문학이라 하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전국 문단에 등장하고 인정받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이어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다층’의 출발은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의 개막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 수 있다. 우편으로 원고청탁서를 발송하고 작품을 원고지에 써서 우편으로 잡지사에 보내던 시대에 인터넷 메일로 원고를 청탁할 수 있고 원고를 받을 수 있으니 바야흐로 ‘내가 있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 시대가 열린 셈이었다.

하지만 제주라는 섬에서 문예지를, 그것도 전국을 겨냥한 문예지를 만드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문인으로서 변방의 신생 문예지에 원고를 주는 것은 일종의 ‘작품 낭비’로 여겨지는 분위기이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편집 방향을 틀었다. 소위 ‘잘 나가는 시인’들보다는 작품이 좋고 열심히 창작하는데 지면을 구하지 못 하는 시인들을 찾았다. 경향 각지에 의외로 제도권 문학에서 소외된 시인들은 많았다. ‘젊은 시인 7인선’을 꾸려 등단 10년 내외의 시인들을 조명하고 ‘젊은 시조시인 3인선’을 꾸려 신인 시조 시인들을 조명했다. 

외국 문학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동남아 및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문학을 소개하는 해외 시단을 소개하고 원로부터 신인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시와 시조 작품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소개하는 지면을 두고 전국의 문인과 독자들에게 제주를 통해 문학적 영감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지난 세월 동안 문학 지형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중앙 대 지방이라는 구도는 지역 중심의 문학으로 바꾸었고 수도권이 아닌 곳에 있다고 변방 의식이나 소외감에 시달리는 문인도 없다. 

그래서 ‘시의 날’ 행사를 겸한 지령 100호 발간을 기념하여 11월 4일 ‘2023 섬, 제주 詩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도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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