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맹월, 느지리못(ㅁ+아래) 이름을 딴 느지리오롬
웃맹월, 느지리못(ㅁ+아래) 이름을 딴 느지리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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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느지리오롬

느지리오롬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산 5번지에 소재한다. 도로명 주소로는 명월성로에 있다. 느지리오롬은 제주시 쪽에서는 여러 갈래 길이 있어 헷갈린다. 또한 오롬 외관을 사진 찍으려고 몇 바퀴 돌았지만 느지리오롬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비닐하우스들이 전망을 가리고, 서쪽으로는 명월성로의 전신주들과 양돈장이 시선을 가린다.

느지리오롬은 해발 225m, 비고 85m로 금오롬·정물오롬·가재오롬(비양도)에 이어 네 번째나 면적·저경은 금오롬·정물오롬 다음이다. 느지리오롬은 전망이 트이지 않은 것은 사방이 마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쪽 명월성로에 있는 어떤 팬션으로 들어가서 뒤 뜰로 나가니 억새와 잡풀이 키만큼 자라서 앞을 가린다. 그래도 속을 비집고 나가니 느지리오롬이 빼죽이 얼굴을 내밀어 가까스로 그 모습을 찍었으나 남쪽과 서쪽은 담을 수 없었다.

‘느지(느조)리을’은 문헌상 이조 때 이원진의 ‘탐라지’에 ‘느’는 늦을 ‘만(晩)’, ‘조’는 ‘아침 조(早)’로 표기하여 ‘만조리’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제주어 ‘느조(느지)리’를 한자를 빌어 음차한 것뿐이다. 한편, 느조리실은 오롬에 막혀 해가 늦게 뜨기도 한다. 17세기 ‘탐라순력도’에는 만조망이라도 불렸고, 18세기 중반에는 봉화대(烽火臺)가 세워지며 만조봉(晩早烽)이라 불렸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부터 느조리는 쉬를 살피는 망오롬이였다.

‘상명리’는 19세기 ‘제주군읍지(1899년)’ 때부터 있었다. 고려 때는 명월현, 조선 때는 명월 진(군지역사령부)이었다. 명월리 위에 있으니 ‘웃맹월(明月)’을 한자로 표기하여 ‘상명리(上明里)’가 되었다. 예로서 판포리 ‘널개오롬’도 ‘널’은 ‘판자의 판(板)’, ‘개’는 ‘포구의 포(浦)’자이니 판포리지만 ‘널개오롬’하듯이 ‘느지리오롬’도 ‘상명오롬’보다 일찍이 불려온 ‘느지리오롬’인 것이다.

16세기 이후 제주에는 3성 9진 25봉대 38연대가 세워진다. 이때 명월진에는 2개의 망대인 도내망대(현, 애월읍 봉성리-금성리 소재 어도오롬/도노미)와 만조망대가 세워진다. 느지리오롬(만조망대)는 애월진 도내망대로부터 봉화를 받아 차귀진 당산망대로 연계하여 주던 봉화대이다. 그래서 만조봉화대가 있어서 외적의 침입를 망보던 곳이라 망오롬이라 불린 것이다.

서쪽으로는 한경면 당오롬이 보이는데 “아하! 그래서 느지리오롬 봉홧불을 당오롬에서 받을 만하구나” 싶다. 북서쪽으로는 정월이·널개오롬·비양도가 나무 사이로 언듯언듯한데 동쪽으로는 금오롬이 우뚝하나 남쪽과 동쪽으로는 이달이·새별오름·바리메·북돌아진오름들도 보일텐데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망오롬은 4·3사건 전까지만 하여도 쉬(牛馬)를 먹이던 테우리(목동)들이 쉬(牛馬)를 망보던 곳이라고 해서 망오롬인 것이다.

이 마을 출신 강씨 친구는 “어렸을 적에 이 오롬에 볼레(상록수 막게볼레 열매, 낙엽수 보리똥 열매)을 따 먹으려 자주 올라왔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이 오롬에는 큰 나무가 없었다”고 한다. 필자의 견해는 5.16 군사정부는 식목 정책에 집중했는데 이 오롬에 키 큰 소나무들을 보니 육십년은 넘어 보이는 데 삼나무가 아닌 소나무들을 식목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판에는 전망대가 있다고 나타나 있어서 두 번이나 오롬을 올라서 전망대를 찾으려 하였지만 전망대를 찾지 못하던 중에 이 동네 강씨 친구를 만나서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전망대가 있었는데 태풍이 분 후에 기울어지고 낡아져서 철거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전망대를 세우던지, 아니면 전망대를 세우기 전까지는 글자를 가려 두는 게 맞을 것 같다.

느지리 오롬은 복합오롬으로 분류한다. 느지리오롬이 그렇게 분류되는 것은, 두 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느지리의 분화구 중에 북동쪽에 있는 것은 조금 작고, 큰 분화구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오롬 둘레길을 걷다 보면, 서남쪽에 있는 분화구는 그 깊이가 꽤 깊고 넓은 편인데 잡목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그 밑을 보기가 어렵다.

아름답다는 ‘상명망봉’이 보고 싶지만 해 질 녘까지 기다리지 못하여 아쉽다. 정상에서 둘레길을 돌아 정자가 있는 입구까지 길을 재촉한다. 꽤 굵은 해송들이 우거졌다. 오롬에는 구럼비·후박·참식·담팔수·비목·예덕나무·천선과 뿐 아니라 팽나무와 보기 드물게 푸조나무(열매)도 보이고 졸참나무·상수리 나무와 같은 낙엽수들 속에 가끔 비자나무도 보인다.

오롬 주위는 화장실도 있고 주차장도 있는데 정자에 앉아서 검불령(쉬어)갈 만도 하지만 옛 모습이 사라진 오롬이다. 40년 전, 필자가 청년 시절이던 때만 해도 오롬 주위는 완전 두메산골이었다. 그러나 이제 느조리(상명리)는 펜션이 곳곳에 들어차 도시가 부럽지 않다. 하얀 메밀꽃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아래 가을빛을 더하는 10월, 느조리 오롬을 다시 오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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