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녹지가 주는 행복
도심 녹지가 주는 행복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25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택 열린도시연구소 대표·논설위원

언제 한 번 걷자걷자 했던 경의선 숲길 효창동에서 연남동 구간을 걸었다. 8㎞ 정도 되는 구간인데 주변 풍경을 보면서 걸었더니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경의선숲길 주변은 정말 복 받았다는 것이다. 숲길이 생기기 전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런 멋진 변화가 도시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경의선숲길 처럼 멋진 녹지가 있는 지역이나 도시가 전 세계에 몇 곳이나 있을까. 뉴욕의 하이라인을 가보지는 못 했지만 콘크리트 위에서 녹지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서울의 또다른 녹지인 서울로7017도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도시의 유휴시설을 녹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녹지와 물길을 만드는 것은 지면 위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철도 폐선이라는 우연한 도시 현상 아니고서는 이렇게 대규모의 도심 녹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경의선은 경성과 신의주를 잇는 철길이었고, 1906년 개통돼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중요한 노선이었니다. 그런데 1950년 6·25로 인해 남북이 오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2008년 지하화 작업을 거쳐 2016년에 지상 구간이 폐선되고 숲길이 완공된다.

경의선숲길을 걸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간마다 도시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도시는 과거, 현재 그리고 상대적인 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경의선은 도심 한복판을 지나감으로서 시대별로 개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곳은 1960~70년대의 저층 상가, 어떤 곳은 수십층의 주상복합 건물, 어떤 구간은 문화공원, 어떤 곳은 주변이 완전히 상업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스펙타클한 풍경을 8㎞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연남동의 경우 폐선 후의 모습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소상공인 중심의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던 중에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들어와 다양성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공간이 조금씩 생겨났는데 폐선이 되고 숲길이 완공된 이후에는 정말 다양한 콘텐츠들이 들어와 숲길 주변을 재미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단순히 걷는 장소만이 아닌 콘텐츠를 즐기는 곳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효창동에서 출발해서 연남동을 향해 걸었는데 다음에는 거꾸로 걸어보고, 시간대를 다르게 해서 걸어봐야겠다. 여력이 있으면 구간별 건축물의 현황을 조사해보고 싶기도 하다.

철도가 폐선이 되면서 해당 지자체는 골치가 아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멋있게 만들어 놓으니 지금은 보물이 됐다. 새로운 상권이 생기고, 도로로 가득했던 주거지가 쾌적해졌다. 상업시설이 들어와서 시끄러워졌다고 생각하는 지역주민도 계시겠지만 잃는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많을 것이다.

전국의 지자체들도 주변을 잘 살펴보고 도시에 도움이 되는 도시설계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행정가, 정치인들도 하이라인이 유명하다고 일부러 뉴욕을 찾아갈 게 아니라 경의선숲길을 자주 걸으면서 주변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봐야 한다. 보물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주변에 있다. 틸틸과 미틸의 파랑새처럼.

뉴제주일보 기자  good249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